- 입력 2025.09.23 11:23
넘치는 상선 일감…'하이 리턴, 하이 리스크' 감수 필요 없어
2010년대 부실사태 후 고급인력 부족…유가 상승도 한계 있어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조선업이 호황 사이클에 접어들었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 업계 효자 노릇을 했던 고부가가치 해양설비(해양플랜트) 부문 부활은 요원한 상황이다.
상선 시장 활성화로 일감이 이미 넘치는 만큼 일명 ‘하이 리턴, 하이 리스크’라고 불리는 해양플랜트에 사활을 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해양플랜트를 제작할 고급인력도 부족하고, 일정 수준에 오르지 않고 있는 국제유가도 해당 부문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2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1일부터 이날까지 조선 빅3(HD현대·삼성중공업·한화오션)의 올해 해양설비 수주 실적은 ‘제로(0)’다. 해양플랜트 부문이 2010년대 대비 크게 축소되긴 했으나, 3사가 지난 5년간 해마다 산발적으로 수주해온 것을 고려하면 다소 이례적인 결과다.
해양플랜트란 바다 위에서 석유나 천연가스 등 해양 자원을 채취·저장·정제하는 일련의 구조물 및 설비를 의미한다. 연근해에서 해저에 박아 사용하는 고정식 ‘리그’나, 심해 위에 띄워 운용하는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FPSO) 및 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FLNG), 드릴십(일부 조선사는 특수선으로 분류) 등이 해양플랜트 종류다.
상선처럼 운송이 목적이 아닌 거친 바다와 날씨를 헤치고 자원을 시추하는 설비이기에 규모나 종류별로 다르지만, 최소 기당 5억달러에 육박한다. 상선 부문에서 고부가가치로 분류되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나 2만TEU급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도 척당 2억달러 전후인 것을 고려하면 단가가 높다.
이에 2010년대 초반까지는 조선 빅3 포트폴리오 중 60% 이상이 해양플랜트로 구성됐다. 그러나 상선을 웃도는 섬세한 기술력을 요하는 등 공정이 까다롭고, 선주 변심(설계 및 공정 변경) 및 국제유가 등 변수에 취약해 결국 2010년대 중반 대규모 부실사태를 야기한 원인이 됐다.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3사가 조선업 부활기에도 해양설비 수주가 거의 없는 것은 막대한 손실을 경험한 후 10여 년간 암묵적으로 수익성 개선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라며 “현재는 LNG 운반선과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상선 주문이 많고 선가도 크게 올라 3~4년치의 일감을 확보해 위험을 무릅쓰고 해양플랜트에 도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오르지 않는 국제유가도 3사의 해양플랜트 수주를 망설이게 하는 요소다. 통상 유가가 상승하면 석유 및 가스 개발 프로젝트 경제성이 높아져 발주가 활발해지지만, 유가가 하락하면 투자가 위축되고 신규 발주가 감소한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대체로 배럴당 60달러대 후반에서 70달러대 초반 수준에서 형성됐다. 이는 지난 2024년 평균 유가(약 80달러)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조선업계에서는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야 해양플랜트 손익분기점을 기대할 수 있는데, 추후 현재 수준보다 더 오를 것이라는 보장이 없어 발주가 거의 없는 상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주요 기관들은 올해 OPEC+의 점진적인 감산 완화와 비(非)OPEC+의 생산 증가로 공급 과잉이 예상돼 국제유가가 배럴당 74달러 내외에서 형성될 것으로 예측했다.

3사가 공격경영 기조로 전환해 해양플랜트에 과감한 투자를 한다고 해도 당장 발주가 들어오면 소화할 수 있는 인력도 없다.
사업보고서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 종사자 수는 원청과 사내협력사 직원을 합해 5만7000여 명이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은 각각 3만858명, 2만8751명이다. 이를 모두 합한 국내 조선소 종사자 전체 규모는 총 15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 조선업(조선·해양플랜트·방산 포함) 종사자 수는 20만명에 달했지만, 2020년대 초반 9만명 수준으로 급락했고, 최근 수주 호황에 겨우 15만명선까지 회복한 것이다. 그나마 15만명 중 90% 이상은 상선 분야 인력들이다. 2010년대 해양플랜트 부실 사태 때 대부분의 관련 인력들은 전직했거나, 해외로 유출됐다.
복수의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들을 다시 부르기에는 급여 등의 문제가 맞지 않고, 현재는 티오(TO)도 없다”며 “과거 풍부했던 조선·해양인 육성 교육기관은 조선업 침체기와 코로나19를 거치며 거의 폐쇄된 상태라 외국인 인력을 쓰려고 해도 전문적인 노하우를 요구하는 해양플랜트 건조에 투입하기에는 납기 초과 및 안전사고 등의 위험이 따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3사는 하반기 중 일부 대형 해양 프로젝트 수주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모잠비크 코랄 노르테 FLNG 사업 등에서, 한화오션은 브라질 FPSO 프로젝트 입찰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그럼에도 3사는 당분간 수익과 안정성을 우선시할 가능성이 커 해양설비 부문 수주가 올해 연간수주 목표 달성에 영향을 끼치기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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