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일영 기자
  • 입력 2025.04.22 09:33

보험금 지급 빠른 '지수형 보험' 주목…해외 시장 규모↑
보험업계, '신중 대응' 기류…"데이터 확보 충분하지 않아"

이병래 손해보험협회장이 지난 2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손일영 기자)
이병래 손해보험협회장이 지난 2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손일영 기자)

[뉴스웍스=손일영 기자] 최근 서울 면적의 80%가 화마로 뒤덮이는 등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 대응이 시급해졌다. 이에 환경부와 보험업계는 손실을 신속하고 두텁게 보장하는 기후보험 활성화에 본격 착수했다. 

22일 환경부와 손해보험협회는 세계 지구의 날을 맞아 진행된 '기후변화주간' 개막식에서 '기후보험 도입 및 활성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전에 예고없이 발생하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신속한 피해보상이 가능한 '지수형 보험' 상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수형 보험이란 사전에 정한 대로 지수(index)가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약정한 보험금을 지급하는 구조의 상품이다. 보험금 청구가 간편하고 지급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앞서 손보협회는 경기도 및 보험업계와 계약을 맺고 '경기 기후보험(정책성 보험)'을 도입한 바 있다. 이 상품은 내년 4월 10일까지 경기도민의 기후 관련 질병과 상해를 보장한다.

경기 기후보험은 풍수해·지진재해보험 등 전통적인 기후보험 상품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으로 인해 자연재해 규모가 커진만큼 전통적 기후보험은 새로운 위험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있다.

◆해외 '지수형 보험' 도입 확산세…신속한 보험금 지급 강점

해외에서는 지수형 보험 도입이 이미 활성화된 상황이다.

권순일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수형 보험의 글로벌 시장규모는 148억 달러(2023년 기준)에서 2032년 393억 달러로 연평균 11.5%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며 "2023년 기준 자연재해 위험을 보장하는 상품 비중이 56%로 가장 높았고 지역별로는 북미가 35%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했다"라고 분석했다.

미국에서는 RMA(미국 농무부 산하기관) 강수보험이 작물 생육에 필요한 강수량 부족을 보장하는 대표적인 지수형 보험이다. Jumpstar사의 지진보험 역시 지수형 보험으로서 2015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판매됐다. 가입자 범위를 기업에서 개인까지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소액단기보험 형태의 지수형 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선물하는 보험, 지진 지킴이'는 진도 6 이상의 지진 발생 시 보험금을 지급하는 지수형 소액단기보험으로, 보험 가입에서 보험금 수령까지 메신저 플랫폼인 LINE을 통해 간편히 처리되는 특징이 있다.

(사진제공=삼성화재)
(사진제공=삼성화재)

◆국내 지수형 기후보험 활성화 '신중'…"데이터 늘리고 보장 세분화해야"

국내에서는 보험계약의 적법성이 문제되면서 2011년 코오롱스포츠가 한 보험사와 체결한 '지수형 날씨보험' 판매가 중지된 바 있다.

날씨와 매출액 손실 간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미흡한 상황에서 해당 보험은 손해보험의 원리(피보험 이익 존재, 이득 금지 원칙)에 부합한다고 할 수 없어 금융감독원 상품 심사 결과 판매가 보류됐다.

현재 국내 지수형 보험은 삼성화재가 지난 2월 출시한 '항공기 지연·결항 보상 특약' 상품이 유일하다. 기후위기에 따라 폭우·폭설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항공기 지연·결항 등을 두텁게 보장하는 상품이다. 

해당 특약은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제공하는 공공데이터와 연동해 보상 한도를 책정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항공기 지연·결항 보상은 수년간 항공 데이터가 누적된 결과 보험사고의 우연성 측정이 가능해 합리적인 요율 산정이 용이한 편"이라며 "기후 보험 도입이 논의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직 신뢰도 높은 누적 데이터가 많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환경부와의 업무협약도 사고 통계 수집·분석 역량을 높여 지수형 보험 등 데이터 기반 보험금 지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추진됐다"며 "과거 유병자 건강보험 상품도 통계 자료가 부족해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데이터가 누적되면서 상품 출시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결국 지수형 보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보험요율 산정을 상황에 맞게 세분화·정교화할 수 있고 보험사고의 우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 수집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지수형 보험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상을 책정해 실제 손실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점도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업계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들어 지수형 보험 도입 시 보장 범위를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Jumpstar 지진보험(지수형)을 살펴보면 개인에게 보험금으로 최대 1만 달러, 기업에 최대 2만 달러를 지급한다. 이는 전체 손실을 보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지진 발생 후 즉각적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사는 지수형 보험과 실손형 보험을 결합해 손실을 두텁게 보장해야 한다"며 "계약 트리거가 손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소비자에게 사전 고지하고 손실 예방 서비스도 병행해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