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현준 기자
  • 입력 2025.05.05 10:00
김주희 서울청년기지개센터장. (사진=정현준 기자)
김주희 서울청년기지개센터장. (사진=정현준 기자)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완연한 봄기운과 달리, 청년 고용 시장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취업의 문턱은 높아졌고, 구직을 포기한 '쉬었음 청년' 인구는 2022년 이후 해마다 증가세다.

정부는 저성장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구조적인 요인에서 답을 찾고 있지만, 과도한 경쟁 속 스트레스, 반복된 실패와 좌절로 오는 심리적 어려움이 청년들을 점점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대응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청년들의 사회적 '단절'이 장기화할 경우 고립과 은둔 상태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고립·은둔은 단순히 실업률 증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생산인구 감소, 저출산 및 고령화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그에 대한 비용을 초래할 수 있어 종합적인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는 지난해 9월 전국 최초로 고립‧은둔 청년 전담기관인 '서울청년기지개센터'를 열었다. 센터는 오랜 은둔 생활로 움츠러든 청년들이 기지개를 켜고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립됐다. 단순히 이들의 사회로의 복귀 지원을 넘어, 이들이 자기 속도에 맞춰 주도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심리·정서적 지원과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증가하는 청년 실업에 따라 '은톨이'(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 제고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가운데, 고립·은둔 청년 문제의 원인과 해법, 사회의 역할, 센터가 지향하는 비전 등에 대해 김주희 서울청년기지개센터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있는 서울청년기지개센터의 입구. (사진=정현준 기자)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있는 서울청년기지개센터의 입구. (사진=정현준 기자)

-센터에 대해 소개한다면.

"서울청년기지개센터는 전국 최초의 고립·은둔 청년 전담 기관이다. 오랜 고립과 은둔으로 몸과 마음이 움츠러든 청년들이 기지개를 켜고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과 맞춤형 지원을 제공한다. 서울시가 지난 2019년부터 고립은둔청년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과 실태조사를 거쳐 종합지원대책을 수립, 지난해 9월 센터가 오픈했다. 만 19세에서 39세까지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하며, 사회복지사·청소년 상담사·정신보건 사회복지사·임상심리사 등 다양한 전문 인력이 함께하고 있다."

센터 내 천장에는 청년들이 생각하는 센터가 '어떤 곳이고, 어떤 곳이길 바라는지'를 담은 문구가 적힌 패널이 달려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센터 내 천장에는 청년들이 생각하는 센터가 '어떤 곳이고, 어떤 곳이길 바라는지'를 담은 문구가 적힌 패널이 달려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고립 청년과 은둔 청년, 어떻게 구분되나. 

"고립 청년은 정서적 또는 물리적 고립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며, 스스로 고립감을 느끼거나 도움 체계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다. 반면 은둔 청년은 외출이 거의 없고, 방이나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상태가 6개월 이상 이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이들은 대개 우울, 불안, 무기력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인관계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며 사회와 단절돼 있다."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과 진행 방식은. 

"프로그램은 서울시 청년정책 플랫폼 '청년몽땅정보통'을 통해 신청할 수 있으며, 가족이나 지인도 대신 신청이 가능하다. 신청자는 자신의 거주지, 연령, 고립 정도, 심리 상태 등 정보를 기재한 뒤, 오리엔테이션을 거쳐 참여하게 된다. 프로그램은 ▲일상 회복 ▲관계망 형성 ▲심리·정서 지원 ▲사회 진입 준비 네 가지 영역으로 구성해 청년의 주도성과 자기 결정권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오프라인으로는 서울시 12개 권역센터와 중앙센터(기지개센터)를 통해 참여할 수 있고, 외출이 어려운 청년을 위한 온라인 프로그램도 병행하고 있다. 신청 후 장기 미참여자에게는 리마인드 키트와 정보 제공을 통해 사회와의 연결을 유지하고, 중단한 청년도 재참여할 수 있도록 사후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센터 내 '큰 방'에서는 교육부터 운동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센터 내 '큰 방'에서는 교육부터 운동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청년들이 특히 선호하는 프로그램은.

"고립 기간이 길어 일상 리듬이 무너진 청년들은 '산책하기'와 '온라인 리추얼' 프로그램 등과 같은 일상 회복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아침 산책하기는 오랜 실내 생활로 신체 기능이 저하된 청년들이 걷는 습관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준다. 초기에는 센터 인근을 산책하다 점차 한강 등으로 확대되며 호응을 얻었다.

온라인 리추얼은 나를 돌보는 활동으로 매일 아침 9시 기상 후 커튼 열기, 물 마시기, 방 정리, 긍정 카드 필사하기 등 일상 루틴을 함께 실천하는 비대면 프로그램으로, 생활 리듬 회복과 심리적 안정을 돕는다. 이 외에도 제빵·노래·볼링 같은 원데이 클래스와 대화·소통, 금융 교육 등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내 방'에서는 청년들의 편안한 휴식과 대화, 개인 작업 등이 가능한 1·2인 전용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내 방'에서는 청년들의 편안한 휴식과 대화, 개인 작업 등이 가능한 1·2인 전용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고립·은둔의 주 원인은 무엇이고, 사회적으로 개선할 점은.  

"고립·은둔은 가족 갈등, 학교·사회 부적응, 정신적 어려움, 진학·취업 실패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사회 구조적으로는 입시·취업 경쟁 심화, 경제적 격차, 성과 중심 문화 등이 배경에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고립된 청년을 '의지 부족'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오히려 이들을 더욱 숨게 만든다. 고립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손을 내밀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센터에는 다양한 책을 이용할 수 있는 '책방'과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 나눌 수 있는 '주방' 등이 마련돼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센터에는 다양한 책을 이용할 수 있는 '책방'과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 나눌 수 있는 '주방' 등이 마련돼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센터 운영 중 어려움이나 제도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최근 들어 고립·은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인식 개선이 점차 이뤄지고 있지만, 지원 정책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서울청년기지개센터는 전국 첫 사례로 방향성을 찾고 있지만, 선례가 부족한 만큼 시행착오와 도전이 많다. 외부는 물론 고립·은둔 청년 본인도 조급함을 느끼고 빠른 성과를 기대하지만, 이들은 회복과 사회 진입에 시간이 필요한 대상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급한 사회 진입은 오히려 재고립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청년과 사회 모두 여유와 기다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과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고립·은둔 청년의 주변인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은.

"고립과 은둔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문제라기보다는 변화와 극복이 가능한 과정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회 기준과 속도에 맞춰 조급함을 강요하면 더 깊은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성과 속도를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지지'는 청년들이 회복하는 데 큰 힘이 된다. 그러니 "실패해도 괜찮고,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 가장 큰 응원이다." 

김주희 서울청년기지개센터장이 센터의 목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김주희 서울청년기지개센터장이 센터의 목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센터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센터는 고립·은둔 청년이 사회와 다시 연결되고, 자기 삶을 주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순히 일시적 지원에 그치지 않고, 안전하게 사회를 경험하며 자기 결정권과 주도성을 바탕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청년이 이곳을 떠난 이후에도 의미 있는 관계망과 지지 체계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고, 좌절을 겪더라도 언제든 다시 돌아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지대'로서 존재하길 바란다. 더 나아가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에도 앞장서고자 한다."

-고립·은둔 청년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누구나 예상치 못한 이유로 고립되거나 은둔의 시간을 겪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늘 '빨리빨리'를 외치지만, 누구에게나 각자의 속도가 있고, 때로는 멈추는 시간도 필요하다. 지금은 멈춰 있는 시간이더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용기를 내시면, 그 여정에 기지개센터가 함께할 준비가 돼 있다. '실패해도 괜찮고,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