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8.09 14:00
"안정적 기반 마련할 때까지 지속적 도움 필요해"

[뉴스웍스=김아현 기자] 경기도 성남시 한적한 주택가 골목 사이 자리한 아담한 카페. 평범해 보이지만 특별한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이다. 은둔·고립 청년들은 이곳에서 사회로 나가기 위한 첫걸음을 배우고 있다.
카페 '그런날'은 지난 2020년부터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가 운영 중인 카페다. 일하는학교는 고립·은둔 청년이나 1인 가구 청년 등의 자립을 위해 교육과 일경험을 지원하는 비영리 법인이다.
일하는학교 설립 초기 청년들은 학교 내부에서 교육을 받은 뒤 카페 매장에 연계하는 방식으로 일경험을 터득했다. 그러나 막상 바로 현장에 투입돼 업무를 경험하니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일하는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카페를 열었다. 청년들이 카페에서 경험을 쌓으며 자립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그런날'은 일하는학교에서 오픈한 두 번째 카페다. 일하는학교는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성남 수내동에서 카페를 운영했다가 실패를 맛봤다.
새로 오픈한 카페는 다시 메뉴와 콘셉트 등을 재정비했다. 청년들이 직접 매장 관리를 도맡아 한 달에 한 두명씩 오는 인턴을 가르치기도 한다. 지난 5월에는 서울 강남 서초동에 2호점도 새로 문을 열었다.
뉴스웍스는 '그런날'에서 일하고 있는 임태진 씨와 이정현 '일하는 학교' 대표를 만나 '은톨이' 청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검정고시 준비하던 청년…카페에서 "나도 할 수 있다"를 외치다
'윙윙~'. 작게 조각낸 토마토를 믹서기에서 갈아내는 소리가 들린다. 선홍빛 토마토 주스를 만드는 이는 그런날 카페의 매니저 임태진 씨다. 그는 지난 2023년 10월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1호점과 2호점을 오가며 주 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한다.
"생과일 주스와 수제 마들렌을 주로 판매하고 있어요. 라떼에 들어가는 시나몬 바닐라와 카라멜 시럽, 레몬이나 자몽 등 과일청도 직접 만들죠. 지난 봄에 신메뉴로 '봄꽃 에이드'를 만들었는데, 손님들한테 반응이 좋았어요. 탄산수에 벚꽃 시럽을 넣고 식용 꽃을 올렸어요. 직접 만든 음료와 디저트를 손님들이 맛있다고 해줄 때 보람을 느껴요"
임 매니저가 일하며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일하는학교 인턴들이 실습하러 올 때다. 그는 레시피를 교육하는 등 인턴들이 일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턴들과 함께 성남시청에서 주최한 '환경의 날' 행사에 나가 마들렌을 판매했다. 인턴들에게는 매장이 아닌 낯선 현장에서 음료와 빵을 판매하며 색다른 일경험을 쌓는 기회가 됐다. 그는 "행사 준비로 힘들기도 했지만, 인턴들이 재밌고 뿌듯하다는 반응을 보여서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어느덧 2년 차 직원이 된 임 씨가 처음부터 카페 매니저로 일할 생각이 있던 건 아니었다. 그는 약 4년 전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일하는학교를 접했다. 당시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임 매니저는 무료 강의를 제공한다는 말에 일하는학교를 찾아갔다. 그러다 이정현 일하는학교 대표의 권유로 일경험 프로그램 '꽃길'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베이커리에서 짧은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었지만 낯설었죠. 커피머신이 수동이라 작동법을 익혀야 했고, 베이킹과 음료 제조도 유튜브를 보며 독학했어요. 빵 반죽과 과일 손질 등 재료를 준비하다보면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 할 때도 있죠"
그렇지만 일을 시작하고 나서 그는 스스로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예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이걸 해도 될까'하는 고민에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 '일단 해보자'라는 마인드가 생겼죠. 일단 해보면 생각보다 괜찮을 때도 많더라고요"
임 매니저는 "지금은 카페 일을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글을 쓰고 싶어요. 제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을 내보는 게 꿈이에요. 그래서 요즘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일 서툴고 소통 미숙하지만…"단순 '꿀알바' 아닌 사회 향한 첫걸음"
'그런날'에서의 일경험은 일반적인 아르바이트와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는 청년들은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일이 서투르거나, 소통이 미숙하다. 정서적인 어려움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대개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일자리를 찾아 지원하는 일부터 버겁다.
이정현 일하는학교 대표는 이러한 인턴들에게 차근차근 사회에 나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일머리가 부족한 친구에게는 마들렌 포장 등 쉬운 일부터 맡겼어요. 처음에는 포장 모양이 들쑥날쑥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기 좋은 모양으로 바뀌더라고요. 지각을 자주 하던 친구는 제시간에 출근하는 걸 목표로 삼아 차츰 늦는 시간을 줄여 나갔어요. 일반적인 사회생활에서 이유도 모르고 혼나던 일들을 여기에서는 하나하나 배워나갈 수 있어요"
이렇게 일경험 프로그램을 마친 인턴 중 어엿한 사회인이 된 경우도 많이 생겨났다. 카페 매니저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 보육 교사, 개발자, 바리스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진로 멘토링 강사로 초빙되기도 했다. 임 매니저도 일하는학교에 청소년 바리스타 체험 멘토로 나선 적 있다.
이 대표는 일경험이 자칫 '꿀알바'로 생각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인턴들이 쉽게 돈을 벌고 편하게 일하고 간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죠. 그런 인식이 생기면 이후에 사회에 나가서 적응하지 못할 수 있어요. 인턴들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여요. 특히 사람들과 관계 형성하는 법을 가르치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턴십은 하나의 과정이고, 이후에 스스로 진로를 개발하고 취업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고 있죠"
일하는학교는 앞으로도 카페 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위기·고립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카페에서 마들렌 판매가 늘어나 전문적인 베이커리 교육과 생산 시설 등을 확충하려고 한다"며 "이를 위한 후원기관을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혼자 있거나 관계가 단절된 청년들을 위해 운동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며 "작년엔 서울 한강에서 춘천까지 자전거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대회에도 나가는 등 청년들이 에너지를 회복할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속적으로 청년들을 돌볼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 민간기관 등에서 일경험 사업이 많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청년들의 일상 회복과 심리 상담과 같은 지원은 많아졌으나, 그 이후 단계를 함께 모색하고 사회 지원을 활용할 수 있는 도움이 더욱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일하는학교에서 일 경험 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가도 외부의 일터에 나가면 금방 움츠러들거나 적응이 힘든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취업 이후에도 잘 적응하고 있는지 직접 사업장을 방문해 확인한다거나, 취업 준비 중 생계의 어려움이 생기면 지원을 해주는 등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할 때까지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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