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06.16 12:30

美 관세 불투명성에 글로벌 선박 발주 크게 위축
美 발주 아직 없고, 中 조선 컨선 경쟁력도 韓 위협

HD현대중공업이 지난 2024년 인도한 컨테이너선 시운전 광경. (사진제공=HD현대)
HD현대중공업이 지난 2024년 인도한 컨테이너선 시운전 광경. (사진제공=HD현대)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한국 조선업이 승승장구 중이나, 불안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발 관세 위협에 따른 무역 위축으로 글로벌 선박 발주량이 크게 줄어든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조선업 호황을 불러오게 한 미국은 정작 한국에 조선 및 방산 발주를 1건도 하지 않았다. 지난 2024년부터 미국의 견제로 쇠퇴설이 나오던 중국 조선업도 현재까지는 건재하다.

16일 영국 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전 세계 선박 수주량은 166만CGT(71척)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55% 줄어든 것이다. 전월 대비로는 64% 감소했다.

1~5월 누계 수주량도 전년 동기 대비 45.4% 줄어든 1592만CGT(515척)에 그쳤다. 수십년째 글로벌 선박 수주량 1, 2, 3위를 지키고 있는 중국·한국·일본의 수주량은 전년보다 각각 57.6%, 34.5%, 48.4% 줄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으로 글로벌 물동량이 위축돼 있기 때문이다.

통상 선주들은 해상운임이 낮을 때는 신조 발주를 자제한다. 글로벌 해상운송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전주 대비 152.11포인트 떨어진 2088.24다. 미국과 중국이 관세전쟁을 휴전키로 하면서 올해 초 1000대에 머물던 해상운임은 2000대로 치솟은 상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성향상 정책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고, 관세 휴전도 오는 8월까지인 만큼, 최근 운임 상승세는 조선 업계 신조 수주에 미칠 효과는 제한적이다.

물론 한·중·일 조선소 모두 일감이 넘치는 만큼 당장 2~3년은 큰 타격은 없다. 다만 현재의 수주절벽이 이어진다면 호황 사이클은 3년 정도로 일찍 저물고, 2010년대 같은 재무 악화에 시달릴 수 있다.

올 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 조선업이 미국 조선·방산의 유망 고객으로 부각되기는 해도, 신조선 부문은 현재까지 1건의 수주 실적도 없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한국을 비롯한 타 국가로의 선박 발주를 막고 있는 미국의 존스법도 건재하다. 한화오션이 지난 2024년 미 7함대 발주 군함 사업을 수주하기는 했지만, 이는 신조선이 아닌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방산 및 조선업 견제를 위해 노후화된 군함이나 잠수함 등을 교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자국 제조업 활성화에 있다. 한국으로 조선·방산 발주는 해도, 건조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HD현대가 올해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와 조선 협력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한화오션은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존 필린(오른쪽 첫 번째부터) 미국 해군성 장관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 4월 30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유콘'함 MRO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한화오션)
존 필린(오른쪽 첫 번째부터) 미국 해군성 장관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 4월 30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유콘'함 MRO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한화오션)

업계 일각에서는 존 펠란 미국 해군성 장관이 지난 4월 방한해 HD현대 울산조선소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둘러보고 각 사업장에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 보안 유출 우려를 이유로 한국보다는 일본 조선소 활용을 담은 내용의 보고서를 트럼프 대통령에 올렸다는 후문도 나온다.

천신만고 끝에 미국이 추후 한국에 조선·방산 물량을 할애한다 해도, 미국의 높은 인건비와 야드 운영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트럼프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수주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미국 내 제조업이 쇠퇴한 이유도 높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선 업계 한 관계자는 "단순히 미국발 수주로 의미를 한정하기보다는 지금은 미국이 보내는 한국 조선·방산에 대한 긍정적 시그널을 미국 외 글로벌 선주들과 방산 관계자들이 한국 조선 신뢰도 제고로 받아들이고, 발주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한다"며 "인건비 증가 및 기술 유출 우려는 추후 신정부가 미국 정부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신중히 조율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 조선업이 건재한 것도 한국 조선에는 위협 요소다. 클락슨에 따르면, 올해 중국 조선 수주량이 한국 조선에 뒤쳐진 시기는 지난 3월이 유일하다. 당시 한국은 82만CGT(17척, 글로벌 수주 비중 55%)를, 중국은 52만CGT(31척, 35%) 수주에 그쳤다. 당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조선업 견제를 위해 중국 국적을 가졌거나, 제작된 선박들에 대한 입항료를 오는 10월부터 받는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중국의 선박 수주량은 4월 251만CGT(51척, 69%), 5월 64만CGT(42척, 39%)로 다시 한국 수주량을 크게 웃돌고 있다. 1~5월 누적 수주량은 한국은 381만CGT(95척, 24%), 중국은 786만CGT(274척, 49%)를 기록 중이다.

복수의 조선 업계 관계자는 "중국 조선은 과거 한국 조선사들의 전유물로 여겨진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나 고부가가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도 제작은 가능한 수준"이라며 "간혹 사고가 터지기도 하지만, 워낙 가격경쟁력이 있다 보니 보수적 성향의 선주들도 최근 수년간 조금씩 대중국 컨선 발주 비율을 늘리고 있는 중"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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