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06.25 11:08

표면적으로는 미국과 협력 광폭 행보
지분투자는 "글쎄"…존스법 등 걸림돌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지난 24일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서 열린 '한·미 조선협력 전문가 포럼'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HD현대)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지난 24일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서 열린 '한·미 조선협력 전문가 포럼'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HD현대)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정기선 수석부회장이 이끄는 HD현대가 미국 조선·방산에 대해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 

잠재력이 높은 시장인 만큼,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투자 가능성을 열어 놓은 상태다. 다만 현지의 높은 인건비와 불안정한 재무상태 등 진입장벽이 만만치 않아 한화그룹처럼 공격적인 투자에 대해서는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25일 조선 업계에 따르면, 정 수석부회장은 올해 들어 미국과 조선·방산 협력을 위한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단, 정 수석부회장의 행보는 직접 지분 투자 등의 가시적 계약보다는 인적·기술 교류 내지 협업 수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23일부터 미시건대학교 및 MIT, 미 해군사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등 미국 조선·해양 전문가 11명을 초청해 HD현대중공업 조선소를 견학시키고, 한국과 미국 양국의 관련 기술과 비전을 공유했다. 이는 지난 지난해 7월 서울대 및 미시건대와 체결한 3자간 한·미 조선산업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협력 업무협약 차원에서다.

HD현대는 조선 실무에서도 미국 업체들과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미국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ECO)사와 상선 건조를 위한 전략적·포괄적 파트너십을 체결, 추후 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컨테이너 운반선을 공동 건조키로 했다.

방산 쪽에서도 지난 4월 미국 최대 수상함 건조 조선소인 헌팅턴 잉걸스 조선소와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인력 및 기술을 교류키로 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미국과 조선 및 방산 부문 협력 강화를 위해 지난 4월 말 존 펠란 미국 해군장관을 HD현대중공업 울산 야드로 초대한 데 이어, 5월에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독대한 바 있다.

HD현대 및 정 수석부회장의 이같은 최근 행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HD현대를 직접 중국 조선 견제를 위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지목한 데다, 미국 조선·방산 시장 자체의 잠재력도 큰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직접 건조가 아닌 미국의 선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만 해도 오는 2029년까지 2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조선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물론 라이벌 기업인 한화그룹(한화오션)이 현지 필리조선소를 통으로 인수하고, 미국 내 야드를 갖춘 호주 조선사 오스탈 지분 인수까지 추진하는 등의 공격적 행보와는 대조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만 아직은 미국과의 거래 관계가 형성되지도 않았거니와, 신규 발주는 물론 역으로 신규 수주가 사실상 거의 이뤄지지 않는 보수적인 조선·방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HD현대의 행보는 사실상 시장 초기 사업성 파악 단계로 지극히 정석적"이라고 평가했다.

HD현대중공업 울산 야드. (사진제공=HD현대)
HD현대중공업 울산 야드. (사진제공=HD현대)

HD현대는 조선·해양·방산 부문을 제외하면 한화그룹과 사업 집중도나 포트폴리오가 다른 만큼, 현금 흐름이나 동원력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이 가운데 현 시점에서 HD현대가 한화그룹처럼 미국 조선·방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미국의 '존스법'이다.

존스법은 미국이 자국 조선업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1920년 제정한 법안으로, 한국 등 해외로의 선박 발주를 막고 있다. 해당 법은 미국 내 항구를 오가는 모든 화물을 자국에서 건조하고, 소유자나 승무원도 미국 시민과 영주권자인 선박만 운송하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100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해당 법에 익숙해진 미국 조선소들은 경쟁력을 잃고 장비와 시설은 노후화했다. 이를 보다 못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제외한 한국이나 일본 조선소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최근 미국 의회에는 존스법 폐지 법안을 발의했으나, 자국 산업 육성을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트럼프 행정부 조선·방산 육성책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중국 견제와 자국 내 관련 일자리 창출이지, 한국 등을 포함한 해외 사업장에 일감을 주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존스법 이후 100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줄어든 조선과 방산 전문인력과 한국 대비 3배에 달하는 높은 인건비에 따른 낮은 생산성도 문제다. 이에 따라 현지 조선소들의 재무상태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다. 필리조선소만 해도 한화오션이 인수했을 당시 부채비율이 5000%에 가까웠을 정도다.

HD현대 측은 미국 투자와 관련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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