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7.07 12:00
與, 자사주 의무 소각 입법 예고…전문가 "백기사 전략 제약 가능성"
한진칼, 5월 자사주 660억 사내기금 출연…'지배력 방어 꼼수' 비판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재계에 미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포함한 추가 개정안, 이른바 '더 센 상법'을 예고한 가운데, 상법 개정 전 자사주를 활용해 지배력 강화를 꾀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전략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3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상법 개정안은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만을 남겨둔 상태다. 개정안에는 이사 충실 의무 확대 외에도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전자 주총 의무화 ▲사외이사 명칭 '독립이사'로 변경 ▲감사위원 선출 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3% 제한 등 핵심 조항들이 담겼다.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는 별도 유예 없이 즉시 시행된다. 다만, 전자주주총회 도입은 2027년 1월부터, 사외이사의 독립이사 변경과 3% 룰 확대 적용 등은 1년 유예 기간을 두고 시행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진그룹의 자사주 활용 방식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한진칼은 지난 5월 자사주 약 663억원어치를 오는 8월까지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한다고 밝혔다.
명목상 '직원 복지 향상'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실제 목적은 조 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의결권이 없지만, 제삼자인 사내 기금에 출연되면 의결권이 부여돼 실질적으로 조 회장의 우호 지분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불거진 시점은 한진칼의 2대 주주인 호반건설이 지분을 추가 매입한 직후였다. 호반건설은 2022년 3월, '한진가 남매의 난' 종결 이후 KCGI로부터 한진칼 주식을 인수한 뒤 꾸준히 지분을 늘려왔으며, 지난 5월 12일에는 지분율을 18.46%까지 끌어올렸다.
이에 따라 조 회장 등 특수관계인(19.96%)과 호반건설 간 지분 격차는 1.5%포인트까지 좁혀졌고,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에 대응해 한진칼은 3일 후인 15일, 자사주 44만44주(0.66%)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하며 조 회장의 우호 지분을 추가 확보했다.
이어 같은 달 16일에는 대한항공이 LS그룹 지주사 LS가 발행한 65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인수하면서 연합 전선 강화에 나섰다. 이는 호반그룹이 LS 지분을 매입하며 관계 설정에 나선 것에 대응해, 한진그룹과 LS그룹이 사업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반(反)호반' 연대를 형성한 바 있다.
호반 측은 지분 확대에 대해 단순 투자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에서는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자사주 출연은 조 회장 및 특수관계인의 한진칼 지분을 20.09%에서 20.75%로 끌어올렸으며, 특히 직원 수 25명에 불과한 지주회사의 사내복지기금에 출연된 점이 알려지면서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정치권의 시선도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건 '자사주 원칙적 소각' 공약이 이번 상법 개정 이후 '더 센 상법' 추진으로 구체화할 조짐을 보여서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 통과 직후 "이번은 시작일 뿐"이라며 집중투표제 확대, 감사위원 분리 선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포함한 추가 입법을 예고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직무대행은 "7월 임시국회 내에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논의도 본격화할 계획"이라며 공청회 개최와 여론 수렴을 예고했다. 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역시 "자사주 소각 제도화는 올해 하반기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재계에 따르면 조 회장은 보유 중인 한진칼 지분 20.62%를 포함해 델타항공(14.9%), LX판토스(3.83%) 등 주요 우군 외에도 사모펀드 9%, GS리테일(1.5%), 네이버(0.99%), 영원무역(0.72%) 등 다양한 우호 지분을 확보하며 지배력 안정을 도모해 왔다. 하지만 민주당이 법제도 강화를 예고하면서, 과거의 관행적 경영권 방어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최근 태광산업이 자사주 전량(24.41%)을 담보로 3186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 발행에 활용하려다 주주 반발로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조 회장의 자사주 전략이 향후 강화될 법 제도와 충돌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자사주 관련 법이 개정되면 단순한 소각 의무를 넘어 우리사주조합이나 사내출연기금 등으로의 자사주 출연도 절차상 까다로워질 수 있다"며 "직원 보상을 명분으로 한 출연은 원칙적으로 금지가 어렵지만, 사실상 어렵게 만드는 규제는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향후 자사주 제도 변화로 기업 간 동맹 구도에도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교수는 "자사주는 본래 소각이 원칙인데, 이를 교차 보유 형태로 활용해 백기사를 만드는 전략은 제도 변화로 인해 제약받게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한항공의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는 조 회장은 최근 경영 전반에 걸쳐 연이은 구설에 휘말리고 있다.
지난달 대한항공이 제출한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통합 방안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당일 반려됐고, 좌석 간격이 좁은 이른바 '닭장 배열' 논란으로 소비자 비판에 직면했다. 자회사인 저비용항공사(LCC) 진에어에서는 기장이 "자사 항공기를 타지 말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며, 관리 부실을 지적하는 내부 고발도 제기됐다.
관련기사
- '3%룰' 파워 상법개정안 국회 통과…재계·주식시장 후폭풍 '스타트'
- '상법 개정안' 고심하는 경제계…"무분별한 소송 남발 우려 돼"
- [취재노트] 대한항공 마일리지 통합 '숫자' 아닌 '소통' 필요
- 대한항공 마일리지 통합안 제출 'D-데이'…합병 비율에 쏠리는 눈
- 대한항공 경영권 분쟁 불씨 여전…주주가치 훼손 '불가피'
- 대한항공 경영권 방어 나선 조원태 회장…호반과 지분율 격차 2.3% 벌려
- 대한항공 경영권 둘러싼 '4파전'…조원태 회장 지배구조 '취약'
- '조원태 회장 불참' 대한항공 주총…마일리지 통합 설명 없이 안건 원안 가결
- 대한항공, 창립 56주년…조원태 'KE 웨이' 선포
- 태광그룹의 딜레마…'사업 확대'와 '신뢰도 제고' 선택은
- 한진그룹 '창립 80주년'…조원태 회장 "세계 최고 종합 모빌리티 기업 도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