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7.26 14:00
25% 상호 관세 부과 D-6…미국, 일본에 이어 EU와도 15% 인하 합의 임박
'투자=관세 인하' 공식…전문가 "외교·기술·산업 아우른 패키지 전략 필요"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미국이 내달 1일부터 미국산 제품에 대한 25% 상호관세 부과가 예고된 가운데, 일본이 5500억달러(약 755조원) 규모의 투자를 조건으로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미국이 사실상 '투자에 따른 관세 인하' 공식을 제시하면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미국 측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특히 한미 고위급 '2+2 외교·통상협의'가 돌연 무산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미국이 '한국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제기된다. 당초 한국은 1000억달러(약 137조원) 규모의 투자 카드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본의 거액의 투자 발표에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진 형국이다.
한국과 일본은 대미 수출 구조나 품목이 상당부분 유사한 만큼, 미국 정부와의 관세 협상 결과에 따라 수출 경쟁력이 갈리게 될 수 있다. 만일 한국이 일본과 유사한 수준으로 관세율을 낮추지 못한다면 상당한 후폭풍이 우려된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회동하고 관세 협상에 대해 약 80분간 논의했다.
김 장관은 조선·반도체·배터리 등 전략 제조업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 강화 방안을 소개하고, 이를 고려해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 및 상호 관세 완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하게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 같은 날 예정됐던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 본부장의 '2+2 통상 협의'는 미국 측 사정으로 하루 전 돌연 취소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의 개인 일정이지만, 협상 진전에 불만을 품은 미국 측이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전술적 취소'라는 분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일본처럼 미국에 대규모 투자하면 다른 나라도 관세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한국 등 주요 교역국을 정면으로 압박했다. 그는 "일본은 우리에게 5500억달러를 줬고, 우리는 관세율을 28%에서 15%로 내렸다"며 "사실상 일본은 관세를 돈 주고 산 셈"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가 언급한 28%는 미국이 일본 측에 통보한 '25% 상호관세 예고안'을 잘못 말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또 "일본의 투자는 대출이 아니라 계약 체결 시 선지급하는 '사이닝 보너스(signing bonus)'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앞서 일본은 지난 22일 5500억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와 미국산 쌀 수입 확대를 조건으로 자동차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미국과 합의했다. 이에 따라 도요타 등 일본 완성차 업체들의 미국 수출 차량에 적용되던 25%의 품목 관세는 12.5%로 절반 인하됐고, 여기에 2.5%의 일반 관세가 더해져 총 15% 관세가 적용된다.

일본 재계는 이번 협상을 '성과'로 평가했지만, 야당 등 정치권에서는 "미국이 투자처와 투자금 집행 방식을 모두 정하는 굴욕적인 협상"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 일부에선 이번 투자가 최근 자민당의 참의원 선거를 패배한 이시바 총리가 관세 협상으로 덮으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요미우리 등 현지 외신에 따르면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이날 여야 당수 회담에서 미국과의 관세 합의안에 관해 설명했다.
이번 미일 합의는 미국 내부에서도 논란을 낳고 있다. 미국 주요 완성차 업계는 미국 자동차 산업에 좋지 않은 거래라며 불만을 제기했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이번 협상은 한국과 유럽연합(EU)을 대상으로 한 추가 양보 압박의 근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유럽연합(EU) 역시 미국과의 자동차 관세 협상에서 15% 수준을 기준으로 논의를 진행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15% 관세'가 미국의 글로벌 기준선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은 EU에 대해 당초 30%로 예고했던 상호관세를 철회하고 15% 부과를 포함한 개괄적 합의안을 놓고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정부는 삼성,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과 함께 총 1000억달러(약 137조원) 규모의 미국 현지 투자 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의 투자 제안액이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한국의 제안액은 일본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국가 경제 규모에 따라 상대적인 것을 고려, 국가 예산과 비교해 볼 때도 일본의 대미 투자 발표액은 일본 정부 연간 예산(약 1080조원)의 70%를 뛰어넘지만, 한국은 연간 예산(673조원)의 20.4%에 불과하다. 증액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관세 인하에 필요한 조건도 문제다. 미국 측은 앞서 한국 정부에 자국 제조업 부흥을 위한 4000억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 조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미국은 쌀 수입 확대와 30개월령 초과 소고기 수입 허용도 함께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쌀 문제의 경우 WTO 다자 협정에 따른 5개국 쿼터제가 적용돼 있어 일본처럼 미국산 쌀만 추가 수입하는 방식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과잉 공급 구조와 국내 여론을 고려할 때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으로 설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15% 상호관세 적용 자체가 한국에 더 불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한국산 자동차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 수출 시 '무관세'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협상에서 한국이 일본처럼 15%의 상호관세 체계로 편입될 경우, 오히려 기존에 2.5% 관세를 내던 일본보다 불리한 조건이 되는 셈이다. 만약 15% 이상 적용될 경우 국내 여론 악화는 물론, 한국 자동차의 미국 내 가격 경쟁력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결국 단순한 '투자=관세 인하'라는 등식에서 벗어나, 산업 협력과 공급망 안정 등 포괄적인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르면 다음 주 중 미국과 협상 일정을 재조율할 방침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이 제시한 15% 관세가 사실상 마지노선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이를 돌파하기 위한 해법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렸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거론되는 1000억달러 투자로는 역부족이다. 금액을 증액하면서 미국이 원하는 것에 최소한 70~80%까지 접근해야 할 것"이라며 "미국이 요구하는 농산물 시장 개방과 조선산업 활용 등을 통해 관세를 낮춰야 한다. 일본에 비해 우리가 유리한 조선산업을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환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제적 접근보다 외교·안보적 접근이 더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방위비 분담, 대중·대북정책 등 비경제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에 전향적인 스탠스를 보이되, 농축산 분야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일정 부분 양보하고, 철강·조선·자동차 등 공산품 분야에서 실익을 챙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쌀과 소고기 수입 확대는 불가피하지만, 국내산과 수입산을 이원화해 고급시장으로의 전환을 유도하고, WTO 규범 내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은 이미 한국이 줄 수 있는 카드를 대부분 파악하고 있다"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알래스카 LNG,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규제 등 후순위로 미루고 싶은 사안은 전략적으로 시차를 조정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 시절 현대차 메타플랜트 증설과 루이지애나 제철소 투자 등 한국이 가장 많은 투자를 했음에도 트럼프는 자신의 임기 내 투자 약속을 원할 것이기 때문에 투자 규모를 4000억달러에 근접하게 제시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AI 등 미래 기술 분야에서의 전략적 협력을 포함한 패키지 방식으로 실익을 도모해야 한다"며 "정부는 모든 걸 다 챙길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어줄지, 그로 인해 어떤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면밀히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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