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8.08 17:12

[뉴스웍스=손일영 기자] 유럽축구연맹에는 FFP(재정적 페어플레이)룰이 있다. 클럽이 선수 영입이나 급여로 지출하는 금액을 제한하며 공정 경쟁을 유도하는 규정이다. 이를 통해 축구 클럽은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며, 필요한 선수들만으로 만족스러운 경기를 제공해 팬들의 마음을 얻는다.
현재 GA(법인보험대리점) 업계에는 이와 같은 '페어플레이' 규칙이 유명무실하다. GA들은 성과급 성격의 천문학적인 '정착지원금'으로 설계사들을 유인하고, 영입된 설계사들은 실적을 채우기 위해 부당승환과 허위계약 등을 마다하지 않으며 소비자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올해 1분기 GA가 지급한 정착지원금은 총 1003억원으로 직전 분기(838억원) 대비 19.7% 급증했다. 이어 최근 2년 동안 7개 대형 GA 408명의 설계사가 2984건의 신계약을 모집하며, 6개월 이내 소멸된 기존 계약과 신계약의 중요사항을 비교해 알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3583건의 기존계약 '부당 소멸'이 발생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과도한 정착지원금 지급으로 부당계약을 유발하는 GA와 설계사에 엄정 제재 조치를 취할 것이라 경고했다.
다만 정착지원금 지급 자체에 대한 법적 규제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정착지원금은 GA와 설계사 사이의 사적 계약으로 보험업법 규제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업계 과당 경쟁으로 소비자 피해를 유발하는 정착지원금 지급의 실효성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보험설계사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관행이라면 꼭 정착지원금만이 답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정착지원금은 크게 이직 설계사에 대한 금전적 보상과 신입 설계사 양성을 위한 비용으로 구성돼 있다.
경력 설계사에게는 회사 이직 시 못 받은 기존 계약 체결 수수료 보상의 일환으로 정착지원금이 지급된다. 다만, 지원금 지급 계약에는 회사가 요구하는 실적 미달성 시 환수 조건이 포함돼 있다. 설계사가 지원금 상환을 즉시 못할 경우에는 지연이자가 붙는 등 고금리차입금 성격도 띤다. 이에 '설계사 실적 압박→소비자 부당 계약 피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는 것이다.
정착지원금은 '설계사 해촉 후 수수료 미지급' 행태에서 비롯된 GA의 설계사 영입 전략이다.
GA는 통상적으로 위촉계약서에 따라 해촉 이후 담당했던 보험 계약에 대한 수수료는 지급하지 않는다. 사측에서는 해촉으로 인해 설계사가 계약의 '유지·관리'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으므로 유지수수료를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와 같은 논리에는 맹점이 있다. 설계사의 보험모집에 따라 발생하는 사업비는 신계약비를 비롯해 유지비와 수금비로 나뉜다. 이 가운데 유지수수료는 신계약수수료와 마찬가지로 신계약비 항목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유지수수료는 '보험계약의 체결'이라는 성과에 따른 대가를 설계사에게 분급해 지급하는 것일 뿐, 사측이 주장하는 보험의 '유지·관리'라는 모집 행위와는 구별되는 별도의 용역에 대한 대가 지불이 아닌 것이다. 이에 보험업법에서도 해촉 설계사에 대한 유지수수료의 지급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지 않다.
결국 '설계사 해촉 후 잔여 수수료 지급'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간 법정에서도 사측의 자치권을 인정해 해촉 설계사에 대한 수수료 지급은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수수료 환수만 이뤄진 사례가 많았다.
해촉 후 기존 계약에 대한 수수료 지급만 이뤄진다면 설계사 관점에서 굳이 정착지원금을 받으려고 실적 상승을 위해 부당 계약을 체결하거나 회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소비자에게 계약 상품 변경을 요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GA 측에서도 해촉 설계사에 대한 수수료 지급 약정을 설계사와 원만한 합의를 통해 체결한다면, 정착지원금 경쟁으로 인한 사업비 부담을 덜 수 있다.
이를 통해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은 정착지원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 특히 보험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정착지원금의 사용처는 영업 지원 시스템 강화와 신입 설계사 양성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는 업계 제언이 나온다.
GA협회에서는 자율규제로 마련된 '정착지원금 운영 모범규준' 시행을 시작으로 GA 특화 설계사 양성을 위한 지원 방안 수립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정책공약에서 생명보험, 손해보험, GA를 아우르는 통합 상호협정 체결을 통해 시장질서 확립을 유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설계사 영입 과당경쟁으로 보험 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타격을 입고 있는 만큼, 정책을 신속히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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