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9.09 14:37
美 현지 투자 압박하면서 취업비자 조건은 강화
투자 비용과 신변위험 감수까지…재계 "수지 안 맞아"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미국 현지 투자를 압박하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막상 한국을 비롯한 외국기업들 근로자들의 비자를 문제삼는 등 이중잣대를 들이밀자, 국내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추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도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제한 정책에 따라 체류 문제가 걸리면 투자 결실은 고사하고 막대한 손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9일 현대자동차그룹 및 한화그룹 등 미국 현지 투자를 진행 중이거나 계획이 있는 주요 기업들은 최근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직원 구금 사태에 대해 이렇다 할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당사자인 현대차그룹과 LG그룹은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비자문제 해결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에 도움을 요청했고, 현재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물론 구금됐던 직원들은 귀환 조치할 예정이지만, 분명한 것은 당사자들을 비롯한 국내 재계에서는 추후 미국 투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출장을 앞뒀던 직원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경우가 아니라면 출장을 보류하도록 권고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오는 2028년까지 미국에 자동차·부품·제철소·미래산업에 총 3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미국 조선을 위대하게(MASGA·마스가)'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한화그룹을 비롯한 다른 대미 투자 기업들도 정부와의 비자문제 간담회에 참여하고, 내부 점검에도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대로 장기간 근로자를 파견해 미국 경제를 활성화하고, 현지인들에게 기술 전수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막상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투자를 압박하면서도, 자국 노동자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취업 관련 비자 문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 장기 근무를 위해 한국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비자는 고숙련 외국인 근로자(H-1B) 비자다. 그러나 해당 비자는 연간 전 세계에 8만5000건 정도만 추첨 형식으로 지급해 왔고, 준비기간만 해도 1년 정도가 소요된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마저 줄일 방침이다.
미국 근무를 위해 기업에 가장 현실적인 비자는 'L-1' 및 'E-2'이다. 이는 미국 법인과 한국 본사 간 내부 인력 파견을 위한 비이민 비자다. 미국에 지사가 거의 없는 국내 중소기업들은 엄두를 못 내지만,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대기업들은 해당 비자를 활용한다. E-2는 미국과 투자 조약을 체결한 국가 국민이 미국에 상당한 규모의 투자를 할 경우 받을 수 있는 비이민 비자다.
하지만, 두 비자 모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발급조건이 까다로워졌다. L-1 비자의 경우, 파견직원이 특수 전문 지식을 갖고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데, 단순 기술직이나 보편적인 지식으로는 비자 승인이 어렵다. E-2도 단순한 이윤 추구 목적이 아닌 미국 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사업체임을 입증해야 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두 비자 모두 현지 입국 후 취업 허가를 받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서류 미비 등 사소한 실수로도 비자가 거절되는 경우가 많다"며 "비용 부담을 의식해 단기간 체류하려 해도 회사 입장에서는 비자 취득에 들이는 정성에 비해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내심 불편해 한다"고 말했다.
결국 대기업들은 정식 비자가 아닌 여행 목적으로 2년 동안 미국을 오갈 수 있는 '이스타(ESTA)' 허가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들도 체류 목적에 맞지 않는 허가증을 소유한 채 근무했다는 이유로 단속된 것이다.

이 관계자는 "통상 미국 제조업 근로자들은 급여 대비 노하우가 거의 없고 노동조합 성향은 매우 강해 기업은 처음부터 시간과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 투자하는 셈"이라며 "그러나 미국이 이렇게 나오면 기업으로서는 언제 나올지 모를 단속과 구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비자 준비 비용까지 감내하면서 현지에 근로자들을 파견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구금 사태 이후 "한국과 관계가 좋고, 기술자가 우리 국민을 훈련시켜서 그들(미국인)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근본적 문제인 비자정책을 제한하는 현재 정책 기조는 철회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 역시 "미국 이민당국도 트럼프 행정부 기조에 따라 불법 체류자 단속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압박감이 있는 만큼, 또 당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며 "트럼프의 구두약속이 이제는 더 이상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것은 기업이 아닌 일반인도 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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