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9.15 12:00
삼성·현대차·LG, 기존 美 투자 유지하되 불확실성 최소화 골몰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여전한 25% 관세와 근로자 구금 사태가 대미 투자 전선에 심각한 이상기류를 생성하고 있다.
당초 미국 투자를 공언했던 국내 대기업들이 단순 우려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투자 재고에 들어간 상태다. 다만 세계 최대 강국이자, 단일 시장인 미국을 대체할 국가를 찾기 어려운 만큼 기업들은 미국 시장도 포기 않고, 포트폴리오도 확장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현대자동차·LG는 LG에너지솔루션 근로자 미국 이민당국 구금 사태 직후 미국 투자는 낮추더라도 미국 중심 공급망 내에서 대안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이들이 당면한 문제는 여전한 미국 25% 상호관세에 따른 수요 부진 및 수익성 악화, 까다로운 비자 발급 규정에 따른 현지 투자 딜레이 우려 등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4대 중 1대를 판매했을 정도로 미국 의존도가 큰 현대차와 기아는 현지에 기존 앨라배마·조지아주 공장 가동체제를 유지하되, 추후 멕시코 공장 역할을 점진적으로 강화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미 오는 2028년까지 미국 현지 완성차 생산 및 제철소 건설 등에 31조원 투자를 공언했기 때문이다.
현재도 현대차·기아는 미국 판매 상당수 차량을 멕시코 현지 공장에서 생산 중인데 이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활용해 무관세 혜택을 받기 위한 전략이다. 특히 기아는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을 미국 외 캐나다·남미·유럽 등으로도 수출해 미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트랜시스는 멕시코 공장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미국 완성차 공장에 부품을 공급 중이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3조원)를 투자해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보조금 정책에 대응하고, 현지 생산을 통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한국인 근로자들의 비자 문제로 공사 진행 차질 우려가 커지자, 삼성전자는 미국 출장 시 사용하던 전자여행허가(ESTA)나 단기 상용 비자(B-1/B-2) 사용 지침을 강화했다. 즉, 당장 비용은 더 들고 효율은 떨어지더라도 파견보다는 현지에서 인력을 채용하고 양성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구금 사태 당사자인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투자에 대한 심층적인 재검토에 들어간 상황이다.
당장 현대차와 합작해 건설 중인 조지아주 합작 배터리 공장만 해도 지난 4일 미국 이민단속국(ICE) 등의 대규모 이민 단속으로 최소 2~3개월 가동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8500여 개의 양사 신규 고용 창출 계획도 빨간불이 켜졌다. 양사는 정치적 상황이 불확실한 만큼 대안은 고사하고, 가동 재개 시점도 특정하지 못하는 상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조지아 외에도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법인(얼티엄셀즈)을 설립해 오하이오나 테네시주에도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LG그룹 한 관계자는 “당장은 리스크가 크기에 공사기간을 조정하고 인력 운용계획을 수정하는 것일 뿐, 미국 시장을 포기한다든지 그런 의미는 전혀 아니고 속도 조절 차원”이라고 말했다.

재계 한 고위 관계자는 “관세나 비자 문제가 있긴 해도, 첨단 기술과 소비의 중심지인 미국은 반도체·전기자동차·배터리 등 미래 성장 산업에서 절대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미국 시장을 포기하고 중국이나 유럽연합(EU)을 대체 시장으로 삼기에는 정치적 리스크도 따르고, 미국 자체적으로도 시장 규모 및 기술력, IRA 등 막대한 투자 보조금 매력도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예컨대 현대차·기아가 미국 시장 진입 리스크에 따라 멕시코 공장 가동을 강화한다 해도 단시간에 미국 시장을 대체할 수는 없다. 현재 멕시코 몬테레이에 있는 기아 공장 생산 모델은 ‘K4’ 등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소형차종에 집중돼 있다. 기아의 미국 전체 판매량 중 멕시코산 차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18% 수준밖에 안 된다.
그나마 현대차는 멕시코에 아예 완성차 공장이 없고, 부품 정도만 생산한다. 따라서 현대차 미국 판매량 중 멕시코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이다.
대안 찾기가 불가능한 것은 LG도 마찬가지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최대 고객사들은 대부분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 중이다. GM 및 현대차그룹, 스텔란티스와 합작해 미국에 공장을 건설 중인 것도 이 때문이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공급망을 하루아침에 멕시코 등 타지역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추후 정부와 미국과의 관세 및 비자문제 협상 추이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 뿐”이라며 “기본적으로는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인정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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