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09.18 11:20

25% 車관세가 문제 아냐…美 요구 수용 시 외환위기 재현
이재명 정부, '국익과 배치 타협하지 않아' 기조 유지

울산항 수출용 자동차 선적 모습. (사진제공=현대자동차)
울산항 수출용 자동차 선적 모습. (사진제공=현대자동차)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한국과 미국 간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포함한 3500억달러 규모 미국 투자건 실무협상이 길어지면서 조선업계를 포함한 국내 재계가 초긴장 상태다.

미국이 제시한 협상안에는 전액 현금 조달 등 한국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져, 수용 시 한국 기업들은 물론 국가 전체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8일 관가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 정부 간 1500억달러 규모 마스가 프로젝트를 포함한 3500억달러의 투자 펀드 조성에 대한 실무 협상이 교착 상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안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한국이 조성할 3500억달러의 투자금을 현금으로 직접 조달하고, 미국 측이 지정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해당 금액을 양국 ‘윈윈’이 목적이 아닌, 미국 조선업·반도체·바이오 등 전략 산업 재건에만 초점을 맞출 것으로 관측된다.

당초 1500억달러를 마스가 프로젝트에, 나머지 2000억달러를 반도체·원전·에너지 등 전략산업에 설정하려 했던 한국 정부의 계획과 공존할 수 없는 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이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근거로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되는 25%의 품목 관세를 일본처럼 15%로 인하하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재계 한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이같이 요구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사실이라면 90년대 외환위기 때처럼 기업 줄도산까지 이어질 수 있는 문제”라며 “당면한 25% 품목 관세로 일본 등 글로벌 경쟁국과 미국 현지 자동차 판매 경쟁이 뒤쳐질 것을 걱정할 차원이 아니다”고 우려했다.

우선 미국이 원하는 대로 3500억달러를 시장에서 조달하면 외환 보유고가 급격히 줄어든다. 현재 한국의 외환 보유액은 4113억달러로, 트럼프 행정부 요구액의 84%에 달한다. 연간 200억~300억달러 수준의 자금 조달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3500억달러의 현금을 즉석에서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외환보유액은 환율 급변동 시 환율을 안정시키는 실탄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처럼 트럼프 행정부 요구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실탄이 고갈되면 기업을 넘어 국가 전체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진다.

달러 공급이 부족해지면 98년 외환위기 때처럼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상승한다. 이는 곧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반도체·석유화학 등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는다.

국내 한 은행 직원이 돈뭉치를 정리하고 있다. 본문과 관련 없음. (사진=안광석 기자 DB)
국내 한 은행 직원이 돈뭉치를 정리하고 있다. 본문과 관련 없음. (사진=안광석 기자 DB)

포스코 같은 철강사, HD현대 같은 세계 정상급 조선소들은 글로벌 거래 시 대부분 달러로 결제하는데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면 갚아야 할 외채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이를 대비해 거래 시 환 헤지 옵션을 걸고 있으나, 환율이 크게 변동하면 비용이 높아져 방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환율 상승 시 단기적으로 수출에 유리할 수는 있어도, 원자재 가격 상승폭이 높아 결국 제품의 최종 가격 경쟁력이 하락한다. 또 기업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고, 신용등급이 하락해 추가적인 자금 조달도 어려워진다.

외환 보유액 감소와 환율 불안정으로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면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투자금을 회수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이재명 정부가 선포한 코스피 5000 시대는 고사하고 주식 시장 폭락과 기업들의 자산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한국 측 협상단도 이를 우려해 외환위기 등 비상시기에 자국 통화를 미국 달러와 일정 금액만큼 교환하는 ‘달러 스와프’를 제안했으나, 트럼프 행정부 측은 단칼에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한국 정부의 핵심 카드인 마스가 프로젝트도 유명무실해진다. 수십년이 걸릴 마스가 프로젝트 투자액도 한국과 절반씩 부담하되, 한국 조선업체들이 원금을 모두 회수한 시점부터는 90%의 수익을 가져가겠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계획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결국 시간과 돈 모두 낭비하는 꼴로 처음부터 투자하지 않는 게 낫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재계 우려에 이재명 정부는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 사안과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유지 중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부의 대미 투자 협상과 관련 "대전제는 시간에 쫓기지 않는 것"이라며 "국익과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은 문서화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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