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일영 기자
  • 입력 2025.09.20 14:00

금융위 해체·금감원 분리 청사진…DJ정부 정책·감독 기능 분리와 유사
해외 '쌍봉형 감독체계' 도입 예상…"견제보다 시너지 발휘에 집중해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사진제공=각 기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사진제공=각 기관)

[뉴스웍스=손일영 기자] 우리나라 금융당국 체제가 17년 만에 중대한 전환점을 맞을 전망이다. 정책과 감독을 한데 묶었던 '일원화 구조'에서 다시 분리 체제로 회귀하는 조짐이 보이자 한국 금융 거버넌스 관련 논쟁이 심화하고 있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를 위한 법과 각 업권별 일부개정법률안 10개를 당론 발의한 상태다. 이는 당정이 지난 7일 발표한 이재명 정부 조직 개편안 시행을 추진하기 위함이다.

해당 개편안을 통해 기획재정부의 예산 기능을 분리해 국무총리 소속의 기획예산처를 신설하고, 기획재정부는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로 재편한다. 금융위원회의 국내 금융정책 총괄 업무도 신설되는 금감위로 이전돼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금융감독원 내부 금융소비자보호처는 별도 기관인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분리된다.

이번 정부 조직 개편의 골자는 '금융 정책과 감독 기능의 분리'다. 정책과 감독 조직이 타 기관으로 분리·독립해 상호 견제하며 책임성을 높이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는 과거 금융위가 국내 금융 정책 수립과 감독 업무를 모두 총괄하며 감독 기능의 한계를 드러낸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금융위 해체론 vs 존속론…17년간 정권 교체기마다 의견 '분분'

금감위 신설을 포함한 금융당국 조직 개편의 역사는 김대중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당시 김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금융당국 조직을 개편하며 산업과 감독 정책을 모두 총괄하던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부와 금감위로 분리했다.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은 정책과 감독 기능을 모두 도맡는 '관치금융'으로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에 김 대통령은 조직 간 견제와 균형을 위해 조직 재편을 단행한 것이다.

다만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며 상황은 뒤바뀌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신속한 경제 위기 대응을 위해 분산된 감독체계의 한계를 인식하고 정책과 감독 기능을 일원화해 지금의 '금융위'를 출범시킨 바 있다.

17년간 존속된 '금융위-금감원' 금융당국 투톱 체제 관련해서도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소비자 보호 강화와 금융위 해체를 주장하는 측은 2011년 상호저축은행 영업 정지 사태와 2019년 라임·옵티머스 금융 사기를 사례로 들며 금융당국이 정책적 목적(산업 육성) 달성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며 리스크 관리에 있어 감독 기능이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금융 조직 간 '관계 조정' 놓고 이견…"견제·균형 강화" vs "유기적 협력"

이에 이재명 정부는 '정책'과 '감독'으로 이해가 상충하는 조직을 개별 기관으로 분리해, 양 조직이 서로를 견제하며 감독 책임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

다만 17년의 논쟁이 있었던 만큼 야권과 일부 금융권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중복 규제와 정책·감독 기능의 유기적 협력 저하를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어 일각에서는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감독 기능의 독립성·효율성을 강화한다는 것은 명분일 뿐이고, 실상은 '고위직 자리 늘리기'와 감독당국에 대한 정부 영향력 확대 등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기재부에서 예산·재정 기능을 떼어 내 기획예산처를 신설하는 방안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분리 운영 방식을 시도했으나 불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재부는 그간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최후 보루로서 소비쿠폰 사업과 같은 과도한 재정 지출 사업에 제동을 걸어왔다"며 "이재명 정부가 기재부를 공룡 부처로 비난하며 힘을 빼는데 이러한 기재부의 견제가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금감원 분리 방안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금융당국 조직 개편 관련 긴급 토론회에 참석한 오창화 금감원 금융투자 검사2국 팀장은 금소원 출범을 두고 건전성 감독과 영업 행위 규제를 개별 기관이 나눠서 분담하면 '양 부문의 경계적 모호성'에 따라 업무 혼선과 효율 저하가 불가피할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

결국 금융당국 조직 개편에 있어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정책과 감독 기구 분리의 효율성과 감독기관 간의 업무 분장 효과를 두고 각계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억원(오른쪽) 금융위원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장 접견실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과 첫 회동을 갖고 금융정책 및 감독방향과 관련해 금융위와 금감원이 한 팀으로 움직일 것을 다짐했다. (사진제공=금융위원회)
이억원(오른쪽) 금융위원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장 접견실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과 첫 회동을 갖고 금융정책 및 감독방향과 관련해 금융위와 금감원이 한 팀으로 움직일 것을 다짐했다. (사진제공=금융위원회)

◆정책·감독기구 다원화…"감독 업무 유연성 해칠 우려 있어"

먼저 금융위의 국내 금융정책 기능이 경제부 총리 산하 재정경제부로 이관된다면 정책 컨트롤타워는 세종시에 위치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여의도를 비롯한 서울에 금융회사 본사들이 몰려있는 점을 고려했을 때, 금융정책의 속도와 효율성이 저하될 것을 업계 일각에서는 우려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부채 관리 등 정책과 감독 기구가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사안일 때는 양 기관의 물리적·제도적 거리가 멀면 정책 수행 및 관리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을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기구(금감원)와 금융소비자보호 기관(금감위 및 금소원)으로 나눈 '쌍봉형 금융감독 체계' 역시 득실에 대한 논란이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해외 사례를 들며,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쌍봉형 감독체제'를 밀어붙이는 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전후로 쌍봉형 감독체계를 도입한 영국과 호주 등 해외 사례를 보면 ▲감독기관 간 협력 부족 ▲건전성 감독자와 행위 감독자의 규제 중복과 권한 다툼 ▲감독기관 간 규제 기준 차이에 대한 금융사의 혼란이 유발된 바 있다.

김홍범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쌍봉모형의 이론과 실제'를 다룬 논문을 통해 "건전성 감독과 행위 감독 간 상충에 초점을 맞춘 '쌍봉모형'은 이론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어 세상에 보급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현실에서는 건전성과 기업 행위 사이에 경계가 불분명하므로 금융당국 감독체계에 적용하기에는 불완전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외 사례를 보면 '쌍봉 감독체제'를 유연하게 바꿔나가며 감독자 간 상충보다는 보완성(시너지) 발휘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와 같은 감독 기관 구조의 전반적 무정형성을 감안하면 쌍봉 모형을 우리나라가 굳이 선택해야 할 근거는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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