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현준 기자
  • 입력 2025.11.13 15:21

25% 관세 유지에 연 부담 8조4000억…소급 시점 11월 1일도 '불투명'
'핵잠 이견'에 농산물·조선·투자 등 다중 이슈…"이달 또는 해 넘길 수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출처=대통령실 홈페이지)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출처=대통령실 홈페이지)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발표가 지연되면서 현대차그룹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관세 협상 세부 내용을 확정할 양해각서(MOU) 체결도 함께 미뤄지면서 자동차·상호관세 인하 적용 시점이 안갯속에 빠진 탓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올해를 넘길 수도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12일(현지시간) 캐나다 나이아가라에서 열린 G7 외교장관회의 확대회의 참석을 계기로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 약식 회담을 갖고 팩트시트 관련 현안을 논의했다.

앞서 한국과 미국은 지난달 29일 경주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통해 관세 협상 후속 조치와 안보 협력 내용을 담은 팩트시트 초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안보·통상 조항에 대한 문구 조율이 마무리되지 않아 발표가 2주 넘게 지연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날 "팩트시트가 13일 발표될 것이라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며 "발표 시점과 내용은 미정이다. 확정되는 대로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대통령실은 정상회담 직후 조속한 공개를 예고했지만,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핵잠) 도입 과정에서 연료 공급 방식 등 미국 내 부처 간 견해차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 운영도 발표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현대차그룹 양재동 본사 사옥. (사진제공=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 양재동 본사 사옥. (사진제공=현대차그룹)

팩트시트 발표가 늦어지면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곳은 현대차그룹이다. 현재 한국산 차량은 미국 시장에서 25% 관세를 그대로 부담하고 있다. 관세 인하 효력 발생 시점이 12월까지 확정되지 못한다면 4분기 실적 개선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한미 관세협상 타결 직후 증권가에서는 관세율이 15%로 인하될 경우, 현대차의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5% 이상 개선되고, 기아 역시 영업이익이 2조5000억원 수준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현대차·기아의 3분기 관세 비용은 각각 1조8212억원과 1조2340억원에 달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연간 관세 부담은 약 8조4000억원이지만, 15%로 인하될 경우 5조30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관세 인하가 이뤄질 경우 약 3조100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반면 협상이 지연돼 25% 관세가 유지되면 현대차그룹의 부담은 도요타(6조2000억원)·GM(7조원)·폭스바겐(4조6000억원)보다도 높아진다.

현대차 울산공장 선적부두에 수출용 자동차들이 대기 중이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현대차 울산공장 선적부두에 수출용 자동차들이 대기 중이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관세 인하가 이번 달 즉시 적용되더라도 반영까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완성차업계는 조속한 확정을 요구하고 있다. 김승준 기아 재경본부장은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11월 1일 자로 소급 적용이 이뤄져도 이미 재고분에 대해 25% 관세를 낸 상태라 4분기 실적 개선 효과는 제한적이며, 내년에야 본격적인 반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팩트시트 지연의 원인으로는 핵잠 건조 장소와 관련한 양국 간 이견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은 법적으로 군용·상업용 선박의 해외 건조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한국과의 역할 분담은 의회 승인 없이는 어려운 구조다. 백악관 홈페이지 팩트시트 게시판 역시 10월 29일 게시된 10억달러(약 1조4674억원) 규모의 성사된 내용 이후 추가 업데이트가 없어, 관련 논의가 멈춰 있는 듯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안규백(오른쪽)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안규백(오른쪽)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발표 지연을 두고 일각에선 핵잠 외에도 농산물·조선·투자 조건 등 미국이 요구하는 다중 이슈가 동시에 테이블에 올라와 있어 세부 문구 조율에 막판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관세 인하 소급 적용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반드시 이달 1일부로 관철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낙관하기 어렵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일본·EU와 달리 한국은 안보 이슈까지 걸린 다층적 협상 구조여서 협상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조연성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핵잠뿐 아니라 200억달러(약 29조3880억원) 투자 약속, 농산물 등 여러 이슈가 얽혀 있어 문구 조정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일본·EU는 미국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지만, 한국은 구조적으로 다르다"고 진단했다. 이어 "투자·관세 문제가 확정되지 않자, 원달러 환율도 불안정하다"며 "11월 내 (팩트시트) 발표 가능성은 있지만, 지연되면 12월을 넘길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재환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핵잠은 산업과 안보가 동시에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내부 검토가 길어지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된다"며 "한국은 11월 1일 소급 적용을 요구할 수 있지만, 미국이 수용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투자 요구를 이미 상당 부분 관철했다고 판단할 수 있어 소급 적용을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큰 틀의 합의 이후 세부 문구 조율 과정에서 양국의 아전인수식 해석이 충돌하고 있다"며 "만약 미 대법원 판결로 기존 관세가 무효가 되면 후폭풍도 상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투자 약속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서 미국이 필요에 따라 추진할 수 있다"며 "그런 맥락에서 한국이 오히려 시간을 더 두고 협상을 진행했어도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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