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한익 기자
  • 입력 2022.03.03 00:05

금융산업과 비금융산업간 경계 사라져…"금융업과 금융서비스의 업무 정의 면밀히 설정해야"

KB·우리·신한·하나금융그룹 본사. (사진제공=각 사)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오는 5월 출범하는 새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하는 정책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금융산업 육성이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조절하며 취약계층의 지원을 늘리는 등 민생금융 정책에 머무는 것이 아닌, 금융 시장 플레이어의 '고도화'와 '글로벌화'를 위한 정부의 금융산업 정책이 필요할 때다. 특히 디지털전환이라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 정부의 정책 방향성은 국내 금융산업의 흥망을 결정지을 수 있을 정도로 큰 파급력을 불러올 수 있을 것임은 자명하다. 따라서 발전을 위한 균형감 있는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금융 시장에 불거진 가장 큰 화두는 기존 금융사와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 빅테크 간의 갈등으로 요약된다.

금융사와 빅테크 간 규제 차별로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기존 금융사의 주장이다. 빅테크·핀테크는 '인터넷전문은행법(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등을 적용 받아 할 수 있고, 은행·금융지주는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등 규제에 막혀 할 수 없는 '불평등'을 개선해 달라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양측의 불협화음은 기존 텃밭을 새로운 플레이어인 빅테크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금융사의 위기감에서 출발한 게 사실이다. 이 사안은 사업을 영위하고 확장하기 위한 '형평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인 만큼, 결코 가벼이 넘길 사안은 아니라는 게 금융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금융업은 진입장벽이 높고 규제가 많은 분야다. 최근 들어 디지털 기술 발달과 비대면 거래 증가에 따라 '디지털 금융혁신'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빅테크·핀테크 기업의 금융시장 진출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업역 간 경계가 사라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도 가속화되면서 '동일행위-동일규제'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초 국내 은행들을 대표하는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새 정부에 "금융의 생활서비스 진출이나 각종 데이터 활용을 제약하는 규제에 대한 개선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며 "은행의 데이터 경쟁력 강화를 어렵게 만드는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 규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개선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금융권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대표적인 사례로 '토스의 타다 인수'를 꼽는다. 핀테크 기업인 토스는 지난해 10월 모빌리티 스타트업 타다 지분 60%를 인수했다. 토스 운영사인 비바리퍼블리카는 '전자금융업자'로, 금산법의 적용을 받는 금융기관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금융위원회의 승인절차는 거치지 않았다. 만약 인수 주체가 금융지주나 은행이었다면 '금산분리 규제'에 부딪혀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또 기존 금융지주나 은행마다 비금융 데이터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각종 금융규제에 발목이 잡혀 대대적인 신사업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알뜰폰 사업인 '리브모바일(Liiv M)'을, 신한은행은 금융권 최초 배달앱 '땡겨요'를 금융당국의 혁신금융 서비스로 지정받아 출시했다. 과거에는 금산분리 규제에 따라 은행은 은행업과 은행업 부수업무만 할 수 있었지만, 전통 금융권도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최대 4년간 규제 유예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제도로도 2년이 지나면 다시 유효기간 연장 허가를 받아야 한다. 승인을 받지 못할 경우 사업을 접어야 한다.

기존 금융권이 '대대적인 투자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비은행업 진출,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등 '특혜'가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을 초래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새 정부는) 규제 정합성을 맞춰야 한다"며 "원래 금산분리를 하려면 인터넷전문은행을 허용해선 안되지만, 문재인 정부가 특혜를 주면서 규제가 엉망이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는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이 커져 (전통적인 금융권에) 얼기설기 임시 특혜를 준 것"이라며 "금산분리 규제를 재정비하고 인터넷전문은행이 은행업을 할 것인지, 할 것이라면 유예기간 동안 다른 사업을 정리하고 계열분리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전선애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예금보험공사 금융리스크리뷰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경우 금융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ICT 회사들이 금융업을 영위하고자 할 때 전통적인 금융회사보다 낮은 수준의 진입 규제, 완화된 수준의 건전성 및 영업행위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ICT 기술혁신으로 금융산업과 비금융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어, 금융업과 금융서비스의 업무 정의를 합리적으로 설정할 필요성 등도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며 "빅테크 기업의 지배력 확대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면밀한 모니터링, 빅테크 기업에 대한 금융감독 방법을 사후적 금융감독 방식에서 사전적 금융감독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법 등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 밖에도 금융권 관계자들은 '금융의 넷플릭스'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당국 정책에 대해 자유로운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새로운 정부에서 조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철저한 감독에 앞서 발전을 위한 의견 개진이 이뤄지는 산업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어느 소속의 누가, 정부 정책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는지 색출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금융산업의 발전은 저마다 소신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가능한 것 아니겠냐"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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