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4.28 08:00
"타인과 분리해야 자신만의 행복길 열려…상황 적극 알려 주변 도움 받아야"

[뉴스웍스=백종훈 기자] "고립은둔의 삶을 뒤돌아보면 '그때는 참으로 따분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 아닐까'하는 망상에도 빠졌었는데 현재 직장 연봉협상에서 우위에 설 만큼 소위 '쓰임 많은 직원'으로 거듭났습니다. 이런 현실은 '고립은둔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제 의지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배민철(가명·33세)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고립은둔의 삶에 갇혀 어두웠던 지난 날과 그 누구보다 열심히 매 순간을 살아가는 현재를 교차해 가며 자기 자신을 한 번 더 성찰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직장에서 세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데 돈 관련 일이다 보니 문의 전화가 정말 많이 온다. 사람들과의 통화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종종 있다"며 "이처럼 100% 만족스러운 삶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고립은둔의 삶에 비하면 만족도는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힘들어도 억지로 버텨볼까"…일순간 온몸 잠식한 두려움
그는 당초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배 씨는 "사회로 나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래서 도피성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며 "그때 두려움에 대해 털어 놓았다면 좋았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타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아버지 말씀에 꾹 참고 주변 사람들에게 숨겼던 게 화근"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대학원 진학 이후 연구실 텃세에 시달리면서 정신적으로 몰리기 시작했다"며 "밤낮이 바뀌고 하루에 15시간 이상 잠으로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시작됐고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고 전했다.
이후 배 씨의 외출 빈도는 눈에 띄게 줄었다. 친구들과의 연락도 완전히 끊었다. 그렇게 1년, 2년, 3년 속절없이 흘러갔고 삶의 의욕 또한 갈수록 떨어졌다.
배 씨는 "고립은둔 생활을 이어가던 중 아버지가 '당분간 생활할 돈을 줄 테니 집에서 나가라'고 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나를 계속 보호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무너지면서 생애 가장 큰 절망감을 맛보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절망감으로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이런 와중에 아르바이트라도 해보려고 여기저기 지원했지만 거듭 불합격되면서 자존감만 바닥을 쳤다"고 말했다.
◆정신과 치료 그리고 '두더지 땅굴'…터널 끝 한줄기 빛
배 씨는 "고립은둔에서 벗어나는 데 있어 우선 자신의 상황부터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탕으로 필요한 도움을 구하는 것이 가장 좋다"며 "고립은둔에 빠진 만큼 이제라도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인식한 순간부터 이런 처지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의지의 불씨를 키웠다"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이어 "이후 '어떻게 하면 고립은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용기를 발휘, 한 병원의 정신과를 방문했다"며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외출 빈도가 점점 늘어났고 사람들과의 소통도 자연스레 회복했다. '두더지 땅굴'이란 고립은둔 해방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그는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고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나니 대화도 즐거웠다. 이 과정에서 정말 오래간만에 성취감과 자존감도 느꼈다"고 말했다.
또 "이때 마침, 가족으로부터의 금전적 지원이 끊겼다. 살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취업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렸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터널 끝에서 한줄기 빛을 손에 움켜쥐었다"고 설명했다.

◆'고립은둔 탈출 유지어터'…"타인 시선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행복 열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배 씨가 고립은둔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새삼 무색하게 느껴졌다. 그의 말과 몸짓, 그리고 눈빛이 자신감과 확신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배 씨는 "제가 이렇게 180도 뒤바뀐 데에는 업무에 대한 성취감, 다시는 은둔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력히 작용한 덕분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고립은둔 탈출 유지어터'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고립은둔에 노출돼 있는 것 같다'는 질문에 "과거에 비해 타인의 삶을 보기가 너무 쉬워진 것 같다. 이를 통해 타인의 삶을 자기 삶과 자주 비교하게 된다"며 "SNS에 올라온 글만 보고 자신의 부족한 점과 대비하면서 자신의 삶을 비관하는 것은 고립은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힘들어지고 피해의식이 생겨나며 나아가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워지는 구조로 악화되는 듯 싶다. 타인과 자신을 분리해야만 비로소 자신만의 행복길이 열린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고립은둔의 결과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이 생겼다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 치료받아야 한다. 비용이 부담된다면 지역별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다"며 "그 외의 도움이라면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알아보는 것도 좋다. 이런 치료가 고립은둔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내 의지로 내가 직접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고립은둔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특별한 사건도 아니며 하물며 장애도 아니다. 조금이라도 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주변에 자신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며 "처음부터 '내가 이야기해도 들어주지 않겠지'라고 비관하고 포기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도움을 요청한다면 적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을 사랑하면 반드시 기적은 일어날 것"이라고 말을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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