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4.23 05:55
교육 통해 협력자원화…"시간 대비 비용 문제로 전문가 '장기 개입' 어려워"

[뉴스웍스=박성민 기자] 대부분의 부모들은 인생에서 아빠와 엄마라는 역할을 처음 맡다보니 서투르기 마련이다. 은둔 초기 증상을 보이는 자녀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비판, 명령, 강요 등의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청소년이라면 사춘기 반항으로 여기고 청년일 경우 무능력한 놈, 사회부적응자로 폄하하기도 한다.
◆은둔자녀 부모, 장기적 관점서 해답 찾아야
심야에 집으로 돌아온 자녀에게 엄마는 "왜 늦었냐. 왜 전화도 안 받아"라고 야단친다. 자녀는 친구 집에서 놀다 왔다고 대답하지만 엄마는 믿지 않는다. 마침 그때 귀가한 아빠는 “집안 시끄럽게 왜 난리냐”며 아내와 자녀 모두를 나무란다.
오상빈 광주광역시 동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이 상담과정에서 파악한 한 가정의 대화 사례다. 부모는 자녀의 늦은 귀가에 부정과 불신이 가득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런 양육태도가 지속되면 자녀는 부모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정서적으로 단절될 위험이 커진다. 사이토 다마키 일본 쓰쿠바대학 사회정신보건학과 교수는 히키코모리 가족에게서 아버지의 '무관심'과 어머니의 '과도한 간섭'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고 밝힌 바 있다.
자녀의 어려움을 파악하지 못하는데다 적절한 의사소통으로 정서적 지지도 확인시켜주지 못하다보니 고립은둔이 심화된다. 이럴 때 부모는 부부간 책임전가, 현실 부정,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가족 전체의 우울과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은둔이나 고립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를 잘못 키운 내 잘못이다', '~때 그랬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했다'처럼 자책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고립은둔을 한 가지 방법으로 단숨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발 나아갔다가 두발 뒤로 가 숨어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숨죽인 채 지켜보는 부모에게 힘들고 긴 시간 동안 버티는 힘이 요구된다.
부모는 자녀의 은둔 사실을 자신의 형제나 자매에게도 말하기가 꺼려진다. 그렇다고 자녀의 치유를 돕지 않는다면 고립은둔은 길어지고 상태는 심각해질 확률이 높다. 부모는 상담 기관이나 사회복지지관, 정신과 병·의원 등을 찾아가 자녀의 현재 상태를 이해하고 관계 및 의사소통 훈련, 양육태도를 점검받아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은둔 청년뿐 아니라 부모 위한 사회적 지원 필요
부모의 절박한 심정은 적절한 상담과 교육을 통해 전문성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 사례관리자, 심리상담사와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 발휘가 가능하다. 부모를 협력자원으로 써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윤철경 지엘청소년연구재단 상임이사는 “최소한 30대까지 부모 개입이 은둔단계에서 침잠기를 줄여 장기화를 예방하는데 효과적”이라며 “부모의 참여와 관심 속에 지원프로그램이 이뤄지면 탈은둔 변화 지표 획득기간을 줄일 수 있다”고 충고했다. 그는 “전문가는 시간 대비 비용 문제로 장기 개입이 어렵다”며 “부모가 은둔고립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활동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립은둔 양상을 보이는 자녀에게 긍정적 대화와 제스처를 통해 갈등이나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신뢰관계 형성에 주력해야 한다. 고등학생 이상이 되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도록 자율성과 책임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녀가 고립은둔에 들어가면 가족도 고위험군에 들어갈 수 있다. 해당 가족을 대상으로 정기적 교육을 실시, 자체 역량 강화를 유도해야 한다. 부모의 심리적, 사회적 회복 지원을 위한 전문 사례관리자 배정, 정신건강문제 극복을 위한 교육과정과 자조모임 형성 등에 대한 지원이 요구된다.

이에 부모를 교육시키는 천개의 별이 주목된다. '부모 멘토링 과정'은 각 12주 동안, 4단계로 진행된다.
기초과정에서는 고립은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감훈련과 의사소통훈련을 통해 가정의 역기능을 바로잡는데 나선다. 세미나과정에선 ‘나의 원가정과 부모, 자녀를 이해하기’ 등 여러 주제와 관련,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상호 성장을 돕는다.
이 과정까지 수료한 부모들은 주멘토와 함께 부멘토로 활동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가정을 돕는 실습과정에 참여한다. 이후 주멘토로서 12주를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은둔고립가정을 돕는 부모멘토 자격을 얻게 된다.
이선하 부모멘토는 "부모 중 한 명의 변화는 부부관계를 개선하며 부부의 성장은 결국 가정의 기류를 변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며 “이 과정에서 고립은둔 자녀들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는 경우를 종종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방 밖으로 나오기를 선택할 때까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함께 있어 줄 수 있는 부모가 지치지 않고 지지하며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부모의 삶이 힘들거나 건강 상태가 나쁘다면 부모의 협력자원화는 실현되기 힘들다.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관심사나 문제를 공유하면서 도움을 주고받는 자조모임은 고립은둔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주요 기능은 ▲정보 교환 ▲사회적지지 확보 ▲유대감 형성 ▲자기계발과 심리적 치유 ▲정책 제안 등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정교한 지원방안을 마련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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