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4.04.29 06:00

고정된 시각의 틀 버려야…'왜 은둔‧고립에 처했나' 근원적 접근 필요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김하늘(가명‧26)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해 8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자신을 사로잡는 절망감에 절대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지만, 그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가족과 조력자들의 헌신이 작은 기적을 만들어내게 된다.

김 씨는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들에게 심한 따돌림을 당했다. 아이들 사이에 ‘무시당해도 되는 애’라는 취급을 받을 정도로 따돌림의 강도가 날로 심해졌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자포자기의 심정에 이르자, 그의 가족은 김 씨의 자퇴를 서두르며 최악의 상황을 벗어났다.

◆'8년의 기다림'…회복의 열매를 맺다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한 김 씨는 “자퇴하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자퇴가 끝이 아니었다”며 “모르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이 나를 해코지하는 건 아닐까’라는 피해의식이 울컥 치밀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순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공황이 찾아왔고, 집 밖으로 나가는 일조차 쉽지 않아졌다”고 돌아봤다.

그럼에도 그의 가족은 김 씨를 포기하지 않았다. 김 씨와 어렸을 때부터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한 누나는 ‘말동무’를 자처했다. 누나의 전폭적인 신뢰와 애정의 손길이 이어지면서 그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됐고, 지원센터에 나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김 씨를 담당한 지원센터 전문가는 대화를 통한 마음의 벽을 허무는 일에 집중하며 매주 20회 정도의 상담을 진행했다. 지원센터의 상담이 끝나면 그의 가족은 오롯이 김 씨에게 집중했다.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센터의 노력은 8년 만에 기적을 만들어냈다.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다짐에 마음속 해빙이 찾아온 것이다. 김 씨는 “지원센터의 대인관계훈련 프로그램과 사회생활연습 프로그램 등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어느 순간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무섭지 않아졌다”며 “가상 회사에 매일 출퇴근하는 프로그램은 소속감을 주는 동시에 ‘나도 누군가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의욕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김 씨는 고용노동부 사업인 청년도전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성취감을 맛보고 난 후, 진학을 진지하게 고민해 지난해 4월 검정고시를 치렀다.

김 씨는 앞으로 자신과 비슷한 ‘은둔 경험’을 겪는 이들을 돕고자 한다. 은둔의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손을 누구보다 강하게 붙들어 주겠다는 게 그의  소망이다.

이화여대 정익중 연구팀은 은둔‧고립 청년들의 특성을 반영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사회 복귀를 돕고 있다. (사진제공=이화여대)
이화여대 정익중 연구팀은 은둔‧고립 청년들의 특성을 반영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사회 복귀를 돕고 있다. (사진제공=이화여대)

◆갑작스레 찾아온 우울증…"청년 은둔, 취업난 해결부터"

최구름(가명‧31) 씨는 성인이 돼 은둔 생활에 들어간 경우다. 최 씨는 부모의 황혼이혼으로 집에서 갑작스레 나오게 됐다.

최 씨는 취업 준비생이었다. 아르바이트로 하며 여러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내밀었지만, 번번이 취업에 실패했다. 이러한 시기에 예측하지 못한 부모의 이혼과 강제적 자립은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지속된 불안감과 경제적 어려움은 우울증으로 이어졌고, 최 씨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를 은둔 생활에 몰아넣었다. 다행히 주변의 관심 덕분에 지원센터를 만나게 됐고, 3~4년 가까이 이어진 은둔 생활을 청산하고 취업에도 성공했다.

최 씨는 “청년 취업난은 사회적 고립감과 좌절감,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하면서 멀쩡한 청년들까지 은둔 생활에 매몰되게 만든다”며 “장기적으로 청년 취업난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청년들의 은둔 생활 문제는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씨와 같은 상황의 은둔 생활 청년들을 수없이 상담해 왔던 지원센터 관계자는 “대다수 청년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은둔을 선택하지 않는다”며 “우리 사회에 취업이라는 압박감이 매우 크게 작용하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청년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실업급여와 비슷하게 단순히 금전적 지원에 우선한 해결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며 “정서적인 부분을 어떻게 보듬어줄 수 있을지, 한번 고립을 경험했던 청년이 재고립하지 않도록 경제활동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은둔 원인,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사회적 동감 필요

김 씨와 최 씨의 사례처럼 은둔‧고립 문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지만, 구성원들의 합심이 문제 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은둔‧고립 문제를 사회구성원이 얼마나 동감할 수 있는지가 문제 해결의 단초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2024 은톨이 리포트’를 통해 살펴본 것처럼, 은둔‧고립 문제는 가정을 시작으로 학교, 직장 등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즉,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에 단편적으로 접근하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풀지 못하는 난제가 될 수 있다.

지난해 말 정부는 은둔‧고립청년 54만명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1341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상담과 경제적 지원 강화에 나서겠다는 내용이지만, 전문가들은 정책 수립에 앞서 은둔‧고립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시각 정립’부터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원센터 관계자는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관련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핵심에서 다소 벗어난 느낌”이라며 “정신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분도 있을 것이며, 취업을 원하는 분, 인간관계를 갈망하는 분 등 은둔‧고립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은둔‧고립 문제는 어떤 고정된 틀을 가지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왜 은둔‧고립에 처하게 됐는지 현상을 바라보는 근원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가정과 학교, 지원센터, 병원, 직장 등 다양한 주체들이 합심해 문제를 풀어가야만 한다. 정부 예산과 이에 따른 관련 정책도 포괄적이고 세부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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