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민서 기자
  • 입력 2024.12.27 08:00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전경. (사진제공=롯데케미칼)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전경. (사진제공=롯데케미칼)

[뉴스웍스=정민서 기자] 올해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최악의 업황 부진 속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발 저가공습에 이어 중동까지 시장에 진출하며 공급과잉이 심화한 탓이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위축마저 지속되며 어려움을 더했다. 이에 업계는 사업 재편 및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유업계 역시 업계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 급락에 중동 리스크까지 합세하며 2분기를 기점으로 실적 부진 늪에 빠졌다. 최근 고환율 기조가 이어지며 수익성에 제동이 걸린 가운데 기업들은 친환경 바이오연료 등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을 통해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석유화학 빅4. (자료제공=각사)
석유화학 빅4. (자료제공=각사)

◆中 공급과잉에 중동까지…위기의 K-석화, 사업 재편 가속

올해 석유화학 대표 4사의 성적표에는 업황 부진이 여실히 드러났다.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금호석유화학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은 501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은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로 수요 위축이 지속된 데다 중국의 대규모 공장 신·증설로 공급 과잉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화학 최대 소비국인 중국이 자급률을 끌어올리며 한국 수입 물량을 대폭 줄였고, 이는 국내 기업 실적에 치명타를 안겼다. 이미 중국의 에틸렌 등 기초화학 제품 자급률은 95%를 넘어섰다.

중동은 120조원을 들여 8개의 정유·석화 통합공장(COTC)을 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부터 일부 가동 중인 쿠웨이트 국영석유화학회사(KIPIC) 공장을 시작으로 오는 2027년까지 순차 가동할 예정이다.

이런 중동 국가들의 석화시장 진출은 예견된 미래였다. 전 세계적인 탈탄소 기조로 기존 원유 수출만으로는 수익성 유지가 어려워지자, 원유에서 곧바로 기초 유분을 제조하는 등 밸류체인(가치사슬) 창출에 나선 것이다.

꿈의 공장으로 불리는 COTC는 원유에서 나프타를 추출한 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등 기초 유분을 생산하는 기존 공정과 달리 원유에서 곧바로 기초 유분을 제조한다. 원유를 뽑아낸 자리에서 바로 제품을 만들다 보니 운송료와 관세 등의 비용도 절약된다.

이에 따라 현재 가동 중인 공장의 에틸렌 생산 단가는 톤당 200달러 이하로, 300달러 안팎인 중국산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내년부터 가동하는 사우디 아람코 COTC의 생산 단가는 톤당 100달러를 밑돌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서는 공급량 측면에서도 상당한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COTC의 에틸렌 생산량은 연 1123만톤으로 전망된다. 이는 LG화학 등 국내 주요 6개 기업의 생산량 1090만톤을 상회하는 양이다. 중국발 공급과잉·저가공습이 판치는 상황에 중동이 값싼 물량을 풀며 국내 기업의 수익성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LG화학 여수 NCC 공장 전경. (사진제공=LG화학)
LG화학 여수 NCC 공장 전경. (사진제공=LG화학)

이처럼 악재가 겹치며 불황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업계는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고부가 제품 개발에 매진하는 등 체질 개선에 나섰다.

LG화학은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작법인(JV) 등 다양한 전략적 옵션을 검토 중이다. 지난 3월에는 석유화학 원료인 스티렌모노머(SM)를 생산하는 여수 일부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2공장 매각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도 포트폴리오 고도화와 함께 기초화학 사업 비중을 30% 이하로 줄이는 '에셋 라이트(자산 경량화)'를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내년 설비투자(CAPEX)는 올해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지난 10월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LUSR) 청산을 발표한 데 이어 파키스탄 법인(LCPC)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신사업에도 속도를 낸다. LG화학은 폴리올레핀 엘라스토머(POE)와 반도체 세정제 C3IPA 등 친환경 제품을 앞세운 스페셜티 개발에 속도를 낸다. 롯데케미칼은 ABS와 PC 등 기능성 첨단소재 사업을 확장 중이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해 고부가가치 신성장 사업을 고도화한다.

한화솔루션은 케이블 소재 등 신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고성능 타이어용 합성고무 소재(SSBR)의 생산능력을 늘리고, 합성수지 등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친환경 제품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대한항공 항공기에 급유되는 GS칼텍스의 바이오항공유(SAF). (사진제공=대한항공)
대한항공 항공기에 급유되는 GS칼텍스의 바이오항공유(SAF). (사진제공=대한항공)

◆정제마진 급락에 '줄적자'…친환경 연료 시장 공략 나선 정유업계

지난 2분기부터 국내 정유업계가 줄줄이 적자 행진하고 있다.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GS칼텍스)의 올해 3분기 정유 부문 영업손실 규모는 1조9539억원으로, 2조원에 달했다.

정제마진 급락에 이어 국제유가까지 동반 하락하며 수익성을 끌어 내린 탓이다. 최근 빚어진 정국 혼란으로 고환율 기조까지 이어지자 업계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업계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을 뺀 금액을 의미한다. 유가가 오르면 석유제품 가격이 따라 상승하면서 정제마진이 커지며, 반대로 유가가 떨어지면 석유제품 가격이 동반 하락하고, 정제마진도 줄어들게 된다.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올해 1분기 배럴당 7.3달러 수준에서 3분기 3.6달러로 절반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통상 정유사들의 손익분기점이 4~5달러선인 점을 고려할 때 거의 이윤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같은 기간 국제유가도 하락세를 보이며 실적을 악화시켰다.

이에 정유업계는 지속가능항공유(SAF), 바이오선박유 등 친환경 바이오연료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 찍고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AF는 석탄이나 석유 대신 폐식용유·동식물성 기름·옥수수·사탕수수 등 바이오 연료로 생산한 친환경 항공유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기존 항공유보다 탄소 배출을 80%가량 줄일 수 있어 탄소중립 시대의 대체 연료로 주목받고 있다.

SAF 시장 규모는 2027년 약 30조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SAF는 2050년 글로벌 수요가 4000억톤을 넘겨 현재 연간 항공유 수요(3500억~4000억톤)와 비슷해질 것으로 분석했다.

바이오 원료로 코프로세싱 방식의 지속가능항공유(SAF) 연속 생산이 가능한 SK에너지 설비 전경. (사진제공=SK에너지)
바이오 원료로 코프로세싱 방식의 지속가능항공유(SAF) 연속 생산이 가능한 SK에너지 설비 전경. (사진제공=SK에너지)

에쓰오일은 올해 1월 국내 최초로 바이오 원료(폐식용유 등)를 정제 설비에서 처리했으며 4월에는 SAF 국제 인증인 'ISCC CORSIA(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를 획득했다.

지난 9월에는 티웨이항공과 SAF 상용운항 공급 및 공동 마케팅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달부터 일본 노선 상용 운항에 필요한 SAF는 물론, 향후 필요한 SAF 공급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GS칼텍스도 같은 날 세계 최대 바이오연료 생산 기업인 핀란드 네스테에서 공급받은 100% SAF를 일반 항공유와 혼합해 제조한 'CORSIA SAF' 5000㎘(킬로리터)를 일본 주요 상사인 이토추를 통해 일본 나리타 공항에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사례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인증받은 CORSIA SAF를 국내 정유사 중에서 상업적 규모로 판매한 첫 사례다. 향후 일본 주요 항공사 ANA, JAL 등에 판매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의 정유 자회사인 SK에너지는 SAF 전용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지난 10월부터 상업 생산을 시작했다. 해당 설비는 '코프로세싱' 방식을 적용해 바이오 원료를 석유제품 생산 공정에 상시 투입할 수 있어 연속적인 SAF 생산이 가능하다. 이렇게 생산한 SAF는 내년 초부터 대한항공 여객기에 공급될 예정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초저유황 바이오선박유를 대만 선사인 양밍에 공급했다. 국내 정유사가 해외 선사에 친환경 연료를 수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오선박유는 국제해사기구(IMO)의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기존 화석연료 기반 선박유를 대체할 친환경 연료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앞서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 6월 국내 정유사 중 최초로 일본 ANA항공에 SAF 수출에 성공했다. 5월에는 코프로세싱 방식으로 제조한 SAF로 친환경 국제 인증인 '국제 지속가능성·탄소인증'(ISCC) 3종(EU·CORSIA·PLUS)을 획득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향후 SAF 공장 신설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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