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성민 기자
  • 입력 2025.03.26 10:30

주가 상승세 속 기습 유증 강행…'밸류업 역행' 논란
기업 가치 제고 참여 저조…공시 혜택 부족 지적도

서울시 장교동 한화그룹 사옥 전경. (사진=박성민 기자)
서울시 장교동 한화그룹 사옥 전경. (사진=박성민 기자)

[뉴스웍스=박성민 기자]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소액주주들을 외면한 이기적인 행태라는 비판에서다. 

일각에서는 밸류업 형태를 역행하는 기업을 막기 위해서라도 금융당국이 코리아 밸류업 지수의 혜택을 늘리는 등의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일 장 마감 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국내 기업 역사상 최대치인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증을 결정했다. 한화에어로는 조달한 자금을 시설 투자 및 타 법인 증권 매입에 쓰겠다고 설명했다.

유상증자란 신규로 자사 주식을 발행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자본 조달을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지분 희석에 따른 가치 하락이 불가피해 통상 악재로 분류된다. 

지난 18일 기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는 장 중 78만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가를 찍었다. 그러나 유증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는 13% 급락했다. 주주들 입장에서는 주가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시점에 찬물이 끼얹어진 셈이다. 

이후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자사주 4900주를 매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번 유증의 목적이 투자가 아닌 김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논란은 여전한 상태다.

증권가 역시 한화에어로의 유증 시점과 방법에 대해 지적을 쏟아냈다.

이지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번에 조달된 자금은 향후 2028년까지 4년에 걸쳐 투자가 집행될 전망이며, 연간 투자 목표액은 한 해에 2조원을 초과하지 않기에 연간 영업이익이 2조원을 상회하는 한화에어로의 이익체력만으로 증자가 가능했을 것이란 아쉬움이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변용진 iM증권 연구원도 "회사가 제시한 투자계획이 2030년까지고, 5년이라는 기간을 감안하면 향후 유입될 현금에 더해 회사채 발행도 적정 규모로 병행했다면, 유증 규모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 2월 11일 여의도 서울사옥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4대 핵심 추진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진은영 기자)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 2월 11일 여의도 서울사옥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4대 핵심 추진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진은영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포함돼 있다. 

이 지수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한국 증시 저평가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난해 9월 선보인 것이다. 당시 거래소는 ▲시장대표성 ▲수익성 ▲주주환원 ▲시장평가 ▲자본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종목을 선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종목 중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고, 두산밥캣은 두산로보틱스와 합병 계획을 밝혔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이를 철회했다. 여기에 한화에어로의 유상증자 사태까지 터지자 밸류업 지수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다. 

거래소는 오는 6월 밸류업 지수에 대한 정기 변경을 실시한다. 밸류업 지수가 처음 산출됐을 당시 종목은 100개였지만, 지난해 12월 ▲KB금융 ▲하나금융지주 ▲SK텔레콤 ▲KT ▲현대모비스 등 5개 종목을 신규 편입하면서 현재는 105개 종목으로 지수가 구성돼 있다. 

최근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은 6월 리밸런싱 과정에서 종목을 다시 100개로 줄일 것이라 예고했다. 신규 편입을 고려하면 최소 5개 종목이 밸류업 지수에서 퇴출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재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은 '빠져도 그만'이란 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원인으로 '실질적인 혜택 부족'을 꼽았다. 

밸류업 발표 당시 거래소가 당근으로 내민 주된 참여 혜택은 세제지원이다. 올해의 경우 밸류업 촉진을 위한 기업 인센티브를 강화해 주주환원 증가금액만큼 법인세 5%를 세액 공제해 주는 등 지원을 늘리기도 했다.

여의도 증권가 야경. (사진=박성민 기자)
여의도 증권가 야경. (사진=박성민 기자)

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코리아 밸류업은 여전히 갈 길이 먼 모습이다. 최근 거래소가 발표한 '우리나라 밸류업 공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말 밸류업 공시가 시행된 이후 이달 17일까지 유가증권시장 101곳, 코스닥시장 23곳 등 총 124곳이 관련 공시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상장사 가운데 5%에 불과한 수치다.  

거래소는 오는 5월 밸류업 우수기업 표창 및 공시 우수 사례, 주요 특징이 포함된 백서를 발간할 예정이며, 더 많은 기업이 밸류업 공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추가 혜택은 언급되지 않은 상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당국 기대와 달리 지난해 밸류업 공시 초반부터 현재까지 대기업들의 참여율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며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한 획기적인 지원 등 동기부여가 없고서는 동력이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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