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03.31 13:09

대기업들 관세 우회…美 현지화 불가피
불투명한 美 정책…전문가들도 이견 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도널드 트럼프 유튜브 채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도널드 트럼프 유튜브 채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전 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상호관세 적용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보편관세 부과는 미국의 글로벌 패권 경쟁국인 중국이 유일했으나, 이제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관세 유탄을 맞을 처지다. 거대 소비시장인 미국의 장벽이 높아지면 수출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에는 큰 충격이다. 중국발 공급 과잉에 허덕이는 판에 트럼프 행정부 관세 조치까지 이뤄지면 반도체·자동차·철강·배터리 등 국내 수출 주력 업종들은 현지화 전략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남는 것은 국내 산업 공동화(空洞化)다. 뉴스웍스는 3회에 걸쳐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후폭풍이 국내 산업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와 공동화 방지를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 짚어본다.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국내 대기업들이 미국 관세에 대응키 위해 현대자동차그룹을 필두로 현지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가운데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시장 의존도가 큰 수출 기업들이나 이들에 일감을 받는 기업들이 적지 않은 만큼, 국내 산업 기반 약화 및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024년 미국 수출액은 전년 대비 10.5% 늘어난 1278억달러다. 대미 수출은 7년 연속 역대 최대 수출실적을 경신 중이다.

현대자동차 울산항 수출 선적 모습. (사진제공=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울산항 수출 선적 모습. (사진제공=현대자동차)

◆버릴 수 없는 美 시장, 현지 진출 카드 '만지작'

현 시점에서 미국발 관세로 국내 산업 공동화가 가장 우려되는 부문은 자동차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완성차 전체 수출액은 707억8900만달러(약 101조8300억원)였다. 이중 대미 수출액은 347억4400만달러로 거의 절반 비중을 차지한다.

225억4700만달러(약 32조4338억원)에 달하는 지난해 자동차 부품 수출액 중에서도 대미 수출 비중이 36.5%로 가장 컸다.

미국발 관세 문제가 아니더라도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해외생산 비중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는 반면, 국내 생산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동차 생산은 전년 대비 2.7% 감소한 412만8242대를 기록해 글로벌 7위에 그쳤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7위) 이후 가장 낮은 순위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미국 관세 문제에 대응키 위해 선제적으로 현지에 향후 4년 동안 210억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산업연구원은 이처럼 국내 완성차 업체가 미국 생산량을 늘리면 한국 생산 대수는 현재의 20%에 상당하는 연간 70만∼90만대가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문제는 현대차그룹처럼 이미 관세 부과가 공식화 된 자동차와 철강군 외 다른 산업군에서도 미국 대규모 투자 조짐이 감지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에 짓는 중인 17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 외에도 추가 공장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LG화학도 미국에 배터리 연구개발(R&D) 센터 건립을 계획 중이다.

SK그룹은 미국에 배터리 공장(SK온)과 반도체 후공정(SK하이닉스) 신설 등을 검토 중이며, 한화그룹은 방산 계열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미국에 위성·발사체·자주포 등 국산 무기 생산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5일 경기 과천시 과천국립과학관 미래상상SF관에서 열린 '현대 전자 문명의 기반, 반도체' 전시장 내부 모습. 본문과 관련 없음. (사진=뉴스1)
5일 경기 과천시 과천국립과학관 미래상상SF관에서 열린 '현대 전자 문명의 기반, 반도체' 전시장 내부 모습. 본문과 관련 없음. (사진=뉴스1)

◆국내 공동화 “문제 없어” VS “중장기 타격 불가피”

현재는 자동차 및 철강 부문 외 미국 관세가 어느 정도 적용되는지, 품목별 정확한 적용 시점이나 어느 기준으로 혜택이 주어지는 지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차그룹의 31조원 투자 때도 상호관세에 예외를 둘 것처럼 말했지만, 그 직후에는 “예외는 너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그 이후에는 26일에는 “모든 국가가 상호관세 대상”이라고 한 데 이어, 최종적으로 ‘선(先) 상호관세 부과 후(後) 협상’ 입장을 고수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행정부 기조상 기업들 입장에서는 이를 배재한 채 향후 투자 전략을 짤 수 없는 상황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공장을 짓기 전보다 국내 완성차 및 부품 생산량과 수출액도 크게 늘어난 만큼 큰 우려는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 생산은 결국 브랜드 가치 향상으로 이어져 국내 생산·수출 증가는 물론 국내 중소업체들의 현지 진출 견인차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미국 생산 확대에 이어 올해 국내에 24조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로서는 완성품에 한해 미국 현지화 확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1~2차 밴더는 몰라도 그 밑 다수 부품업체 등은 공동 현지화가 어려운 만큼 다소 피해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향후 미국 뿐 아니라 인근 국가 현지화도 늘면 국내 생산량도 자연 늘 것이기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면서 “결정적으로 관세 정책 유지 시 미국 현지 물가도 동반 상승하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언제까지고 관세 정책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는 불투명성이 큰 만큼 국내 기업별로 기회비용 관점에서 판단할 것”이라면서 “국내 기업들이 향후 관성적으로 관세를 우회해 현지 생산을 늘리고 국내 투자를 기피하는 추세가 자리잡게 되면 중장기적으로 국내 고용이나 노사문제, 지역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도 최근 한 포럼을 통해 “현대차그룹은 미국 31조원 투자 발표로 관세 폭탄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중견 완성차 업체와 부품 업체들의 부담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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