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5.04.04 15:03
애경타워 전경. (사진제공=애경그룹)
애경타워 전경. (사진제공=애경그룹)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애경그룹이 그룹 모태인 애경산업 매각을 추진하는 가운데, '가습기 살균제' 문제부터 인력 구조조정까지 각종 현안과 마주하면서 매각 성사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애경그룹 지주사인 AK홀딩스는 올해 초부터 일부 사모펀드 운용회사들과 접촉해 매각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에는 삼정KPMG를 주관사로 선정했다. 

AK홀딩스는 공시를 통해 "애경그룹은 그룹 재무구조 개선 및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구체적인 사항이 확정되면 재공시하겠다"고 밝혔다.

애경그룹은 지난해 말 제주항공의 무안공항 참사 이후 재무구조 개선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번 애경산업 매각은 캐시카우(현금창출원)인 제주항공을 살리고자 그룹 모태까지 팔겠다는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코로나 사태 당시 지주사 AK홀딩스는 제주항공에 자금 수혈을 지속하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AK홀딩스의 총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4조원 수준이며, 부채비율은 2020년 233.9%에서 지난해 328.7%로 급등해 부채 임계치를 넘어섰다. 이러한 배경은 애경산업 매각으로 급한 불을 끄고, 항공사업 중심으로 그룹 체질을 빠르게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애경그룹은 ▲항공(제주항공) ▲생활용품 제조(애경산업) ▲석유화학(애경케미칼) ▲백화점 및 유통(AK플라자) 등 크게 네 가지 사업으로 구분된다. 업계 일각에서는 만약 애경산업이 매각된다면, 중국 석유화학 기업들의 '치킨게임'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애경케미칼까지 추가 매각 가능성을 열어둘 것이란 관측이다.

자본시장에서는 애경산업 매각가로 약 6000억원대를 추산했다. AK홀딩스 등 대주주가 보유한 애경산업 지분 63.44%와 함께 주가에서 통상 20~30% 수준이 더 붙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가산된 추정치다.

애경산업의 지난해 매출은 6791억원, 영업이익 470억원이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0% 이상 추락했지만, 업황을 크게 타지 않는 생활용품 제조사라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주방세제 '트리오'와 '2030치약'은 국민적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

애경산업 화장품 브랜드 '루나' (사진=애경산업 홈페이지)
애경산업 화장품 브랜드 '루나' (사진=애경산업 홈페이지)

한편에서는 애경산업을 옥죄고 있는 리스크가 적지 않아 매각 과정이 험난할 수도 있다는 평가다. 이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다면 매각 성사 가능성이 희박할 수밖에 없다.

우선 애경산업은 10년 이상 진행된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남아있다. 환경부는 최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유족 전국 순회 간담회를 진행하고 올해 하반기 관련 주체들의 집단 합의를 이뤄내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 개정안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향후 개정법과 추가적인 법적 소송에 따라 배상금이 크게 불어날 수 있다.

또한 비주력 사업과 인력 구조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애경산업의 사업부문 매출 비중은 생활용품 약 60%, 화장품 약 40% 수준이다. 화장품은 2018년 50.7%로 절반을 넘어선 뒤 예전의 위용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인디 브랜드(중소 브랜드)가 화장품 시장의 대세로 떠오른 뒤로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애경산업의 화장품 공장가동률은 44%로 절반을 넘기지 못한다. 그렇다고 화장품 사업을 축소하기에는 여전히 수익의 상당부분을 책임진다.

이밖에 기업 인수합병 시장이 크게 위축된 점도 부담스럽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해 기업마다 대규모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다수 기업이 금리 인상에 차입 비용이 증가하면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경우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매각자와 인수후보자의 희망가격이 큰 차이를 보여 인수합병 시장의 장기 매물로 전락하기도 한다. 

애경산업 관계자는 "매각은 지주사 차원에서 주도하고 있다"며 "아직 확정된 사항이 없기 때문에 구조조정 여부라든지 가습기살균제 현안 등은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우건설은 2010년 매각 시도 때 구조조정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면서 매각 무산과 함께 기업가치까지 크게 떨어졌다"며 "인력 구조조정과 사업 정비를 진행해 재무 안정성을 최대치로 높여야 하지만, 애경산업은 비주력 사업이 애매해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LG생활건강이나 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경쟁업체들이 애경산업을 인수하기에는 사업 시너지를 장담할 수 없어 사모펀드나 중국계 기업들이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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