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4.12.30 18:28

애경그룹 '버팀목'은 제주항공…영업익 66.2% 차지
이미지 타격 넘어…그룹 '치명타'로 작용할 가능성도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가 지난 29일 오후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 호텔에 마련된 임시 프레스센터에서 무안국제공항 여객기 사고 관련 브리핑을 마치고 취재진에 둘러싸여 퇴장하고 있다. (사진=뉴스1)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가 지난 29일 오후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 호텔에 마련된 임시 프레스센터에서 무안국제공항 여객기 사고 관련 브리핑을 마치고 취재진에 둘러싸여 퇴장하고 있다. (사진=뉴스1)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재계 순위 62위 애경그룹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계열사 제주항공의 무안국제공항 참사로 인해 그룹 전체가 풍전등화에 놓였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은 그룹 내 상장 3사의 전체 영업이익 66.2%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30일 국토교통부는 제주항공의 항공안전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향후 경찰과 중대시민재해 위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방침이다. 전날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동체착륙 충돌사고로 인해 탑승객 181명 중 17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2020년대 일어난 글로벌 항공 참사 중 사망자 수 1위에 해당한다. 참사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정부당국의 전방위 조사와 제주항공에 대한 중징계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올해 창립 70주년인 애경그룹은 이번 사건으로 그룹 존폐를 위협받게 됐다. 제주항공은 애경그룹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동시에 고속성장이 기대되는 유일한 계열사다. 사건 이후 제주항공 표를 예매한 여행객들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다른 항공사로 갈아타고 있으며, 일부 소비자는 애경그룹 불매운동에 들어가는 등 이미지 타격이 본격화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이미지 타격에 그치지 않고 '면허 정지'라는 중징계까지 이어질 경우다. 항공안전법 제264조 제1항에 따르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해 항공기 사고 또는 항공기 준사고를 발생시키면 운항증명 취소 또는 항공기 운항정지 180일에 처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세부 항목에서는 '항공기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150명 이상이나, 200명 미만인 경우'를 들고 있어 이번 사고의 법리적 근거가 된다.

과징금 처분도 내려질 수 있다. 공중이용시설이나 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 결함으로 1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중대시민재해가 적용된다. 1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특히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겹친다면 제주항공이 배상해야 할 액수는 천정부지 치솟을 수 있다.

전민재 법무법인 트리니티 공정거래 전문변호사는 "민사상 손해배상은 사망자가 평생 벌었을 소득을 배상 기준으로 잡고 있으며, 미성년자는 성년 이후부터 보통인부 노임단가가 적용된다"며 "중대시민재해가 인정되면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에 따라 법원은 최대 손해의 5배까지 배상을 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9일 오전 9시 7분경 전남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여객기가 추락해 사고 수습이 이뤄지고 있다. 울타리 콘크리트벽과의 강한 충돌로 기체가 폭발하면서 꼬리 부분만 형체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뉴스1)
29일 오전 9시 7분경 전남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여객기가 추락해 사고 수습이 이뤄지고 있다. 울타리 콘크리트벽과의 강한 충돌로 기체가 폭발하면서 꼬리 부분만 형체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뉴스1)

업계 안팎에서는 제주항공이 항공면허 박탈을 막는 것이 당면과제라 지목했다. 만약 제주항공이 항공사업에서 강제 철수하게 된다면 애경그룹은 곧바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애경그룹은 ▲항공(제주항공) ▲생활용품 제조(애경산업) ▲석유화학(애경케미칼) ▲백화점 및 유통(AK플라자) 등 크게 네 가지 사업으로 구분된다. AK플라자는 비상장사며, 나머지 3곳의 계열사는 자본시장에 상장됐다.

그룹 주요 계열사 실적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 1697억원을 거둔 제주항공을 제외하고 신통치 않은 형편이다. 그룹 모태인 애경산업은 올해 1~3분기 연결기준 누적 영업이익 434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503억원 대비 13.7% 감소했다. 지난 2018년 791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이후 수익성 저하를 거듭하고 있다. 생활용품 내수 시장의 치열한 경쟁구도와 함께 글로벌 시장의 전진기지로 삼은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석유화학은 더욱 암울하다. 애경케미칼 역시 최근 롯데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온 롯데케미칼과 동일한 처지다. 중국 석유화학기업들의 저가 물량공세에 시달리면서 올해 1~3분기 누적 영업이익 17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367억원 대비 51.7% 폭락이다. 시장에서는 향후 영업손실을 막아낼 수 있느냐가 쟁점이라며, 당분간 실적 반등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비상장사인 AK플라자는 지난해 269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전년 190억원보다 손실 규모가 늘어났다. 올해에도 영업손실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여기에 그룹 지주사인 AK홀딩스의 이자 비용은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다. 2018년 276억원에 불과하던 이자 비용은 지난해 1251억원까지 증가했다. 이러한 추이는 외부 차입에 의존하며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탓이다.

2019년 973억원에 그쳤던 자본적 지출은 지난해 3777억원을 기록했다. 2018년부터 항공기 리스와 항공엔진 도입 등 2000억원대의 지출로 제주항공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AK홀딩스의 외부차입은 2020년 1조9605억원에서 지난해 2조4441억원으로 천정부지 치솟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애경그룹은 2005년 제주항공 설립 이후 2010년까지 6년 동안 유상증자만 여덟 차례 진행할 정도로 하늘길 개척에 그룹의 명운을 걸었다"며 "2011년 흑자전환 이후 코로나 팬데믹까지 극복하면서 LCC업계 1위까지 도약했지만, 순식간에 낭떠러지로 떨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과거 17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함께 애경그룹의 또 다른 흑역사이자 그룹 흥망을 결정할 중대사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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