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06.14 14:00

정년연장에 통상임금 판결 위로금…선넘는 현대차 노조 요구
한국지엠도 비슷…사측은 일방통행식 자산매각 및 지부장 해고

현대자동차 울산항 자동차 수출 선적. (사진제공=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울산항 자동차 수출 선적. (사진제공=현대자동차)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자동차 업계 임금·단체협상 시작 단계부터 노사관계 파국 조짐이 일면서 벌써부터 연내 타결 가능성에 우려가 제기된다.

노동조합은 불투명한 경영환경에도 노동자 권리 확대를 내세운 이재명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그동안 관철하지 못한 정년연장 및 통상임금 관련 위로·격려금 지급 등 높은 수위의 요구안을 확정했다. 사측 가운데 한국지엠은 일방적 자산 매각 및 노조 지회장 해고 통보 등 커뮤니케이션을 아예 포기한 듯한 행보로 여러 논란을 야기 중이다.

14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노조는 지난 2024년 사상 최대 매출액(175조2312억원)을 근거로 올해 역대급 임협 요구안을 마련한 상태다.

우선 기본급은 금속노조 지침에 따라 월 14만1300원 인상을 요구하고, 성과급은 전년도 순이익의 30% 지급을 내용으로 한다. 또한 통상임금의 750%인 상여금을 900%로 인상하고, 직군·직무별 수당 인상 및 관련 조항 신설도 요구키로 했다. 기본급과 상여금 인상 요구안은 역대 최대 규모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산정하라고 판결한 데 따라 노조원 전체에 3년치 위로·격려금 2000만원씩을 지급하라는 내용도 담겼다. 작년 대법원 재판 진행 중인 소송 당사자들만 받은 통상임금 산정 소급 적용분을 현대차 노조원 전체에 위로금 형태로 지급해 달라는 취지다.

이뿐만 아니다. 인구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논의에 따라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국민연금 수령 개시 전년 연말(최장 64세)로 연장 ▲기존 35년까지이던 장기근속자 포상 기준에 40년 근속 포함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 도입 ▲현대차 직원에게만 적용되는 전기차 구매 할인제 퇴직자 확대 적용 등 기존 없던 수위의 단협 요구안도 있다.

현대차 노사가 오는 18일 상견례를 앞둔 만큼, 사측 입장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정황상 이를 모두 수용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액을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등의 영향으로 그룹 미래인 전기자동차 판매량은 감소 추세다. 작년 연간 영업이익도 2023년 대비로는 5.9% 줄었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역대 최대 매출 기념 및 사기 진작 차원에서 지난 3~4월 전 직원에게 1인당 평균 3000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한 바 있다.

전기차 캐즘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데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25% 관세 부담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4대 중 1대는 미국에 팔았을 정도로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차의 31조원 규모 미국 투자 보답으로 관세 제외를 언급했지만, 이는 수년 후 신설공장 완공 이후 얘기다.

자동차 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는 미국 시장 잠재력은 물론 의존도도 큰 만큼 토요타 등 글로벌 경쟁업체에 맞서 관세 손해를 감수하고 현지에서 가격 동결 등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 노조가 계속 지난해 최대 실적만을 강조한다면 사측의 미국 현지생산 확대 명분을 제공하고, 결국 국내 생산 공동화를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정문. (사진제공=한국지엠)
한국지엠 부평공장 정문. (사진제공=한국지엠)

미국발 관세 위기에서 다소 무리한 요구안을 확정한 것은 한국지엠 노조도 마찬가지다. 한국지엠 노조는 올해 임협 요구안으로 ▲기본급 5%(14만13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인당 4136만원의 총 2조원 규모 성과급 지급 ▲인당 2250만원에 해당하는 통상임금의 500% 격려금 지급을 확정했다.

한국지엠의 미국 수출의존도는 90%에 가까운 만큼 현대차 등 다른 완성차업체 대비 위험한 사업구조다. 더욱이 빈약한 내수에 따른 상시적 구조조정 위험성으로 매년 철수설이 불거질 정도다.

그러나 노조는 지난해 양호한 실적을 기준으로 임단협에 임하는 만큼, 회사의 잠재적 위험과는 별개라고 선을 긋고 있다. 앞서 한국지엠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14조3771억원, 영업이익 1조3567억원, 당기순이익 2조207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4.7%, 0.5%, 47.3% 늘어난 수치다.

한국지엠 사측은 일방통행식 커뮤니케이션 행보로 그렇지 않아도 무리한 노조 요구로 줄어든 협상 타결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 버렸다.

앞서 한국지엠 경영진은 지난 5월 28일 임단협 노사 상견례도 취소하면서까지 전 직원에 미국 관세 문제 대응 및 재무구조 안정화 차원의 ▲서울·동서울·원주·인천·대전·광주·전주·부산·창원 9개 직영서비스센터 순차 매각 ▲부평공장 내 유휴 자산 및 창고 등 활용도 낮은 시설, 토지 매각 등을 통보했다. 문제는 이 과정이 노조 사전동의 없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에 노조는 대주주인 KDB산업은행과 더불어민주당에 해당 문제를 호소하고 일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후 한국지엠 측은 미국 제네럴모터스(GM) 본사에 모든 권한을 위임받았다며 공문도 아닌 메시지 형식으로 안규백 지부장 해고까지 통보해 왔다.

최근 GM 본사는 향후 2년간 미국에 총 40억달러(약 5조5000억원)를 투자하고, 멕시코 생산물량도 미국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GM이 한국이나 멕시코에서 사업장을 운영해 온 것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비용절감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 행정부의 품목 관세 부과 방침이 유지되면 GM 본사로서는 굳이 한국에 사업장을 둘 이유가 없어진다.

복수의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 최근 한국지엠 측의 일방통행은 아무리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고절적 한국 철수 오해를 더욱 키울 수밖에 없다"며 "한국지엠은 임단협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주채권은행인 산은과 미국 GM 본사 간 계약이 2년 남은 만큼 이재명 신정부의 추후 국내 산업 보호 정책에 달린 듯 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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