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3.05.14 08:10

가정·학교폭력 경험…스무살 이후도 '직장' 문제로 '고립은둔' 늘어

고립·은둔 청년 김찬기(가명) 씨의 방. (사진=독자 제공)
고립·은둔 청년 김찬기(가명) 씨의 방. (사진=독자 제공)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몇 평 남짓한 방 안으로 숨어버린 청년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정서적 또는 물리적 고립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고립' 상태, 고립된 상태에서 외출이 거의 없이 본인의 방 또는 집안에서만 6개월 이상 생활하면 '은둔' 상태로 본다.

고립은둔은 누구나 될 수 있다. 본인이 자각하지 못한 채 이미 고립 또는 은둔 상태에 놓여있을 수 있다. 

고립은둔 청년들은 어릴 때부터 '폭력'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겪은 가정폭력 또는 학교폭력은 스무살이 되기 전부터 자신을 방 안에 가두는 족쇄가 된다. 이들에게 일생에 한 번뿐인 '성년의 날'은 스스로를 축하하지도, 남들에게 축하받지도 못하는 의미 없는 날일 뿐이다.

2019년 12월부터 1년 반 동안 은둔한 장영걸(24) 씨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가정 해체'를 겪었다. 장 씨의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물건을 모조리 때려 부수고 신체적인 폭력을 가했다. 1년에 한 번 이상은 무자비한 매질을 동반했다. 결국 아버지는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고 장 씨는 어머니, 누나와 떨어져 살게 됐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10년 넘게 은둔 생활을 했던 이승우(29·가명) 씨는 중학교 입학 후 시작된 학교폭력으로 인해 한 달 만에 자퇴를 선택했다.

조필근(42·가명) 씨는 어릴 적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아버지로부터 체벌을 받았다. 처음에는 발바닥을 맞는 정도였지만, 이후에는 흉기로 위협을 받을 지경에 이르면서 40대가 될 때까지 스스로를 가뒀다. 

고립은둔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의 관심이 부족했을 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낙오자'로 판단하면서 '열외자'로 흘겨봤다. 조 씨의 사례를 보듯이 고립은둔을 겪는 연령이 40대까지 올라간 상황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성인 된 뒤에도 '취업'과 '직장' 문제에 고립은둔 빠져

미성년 시기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을 피해도 고립은둔의 방아쇠는 여전히 존재한다. 바로 '취업'이다. 취업이 안 돼서, 된 다음에는 적응과 괴롭힘이 문제다. 

긴 시간 취업 준비를 했던 이지혜(34·가명) 씨는 반년가량 고립 상태에 놓였다. 이 씨는 "대학 졸업 후 인생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취업 준비만 5년을 한 것 같다"며 "당시 고립감을 많이 느꼈다. 취업 준비만 하다 보니 세상에 대한 정보도 없고 트렌드도 못 따라갔다"고 말했다.

대학원을 휴학하고 26살부터 6년간 고립했던 배경근(34) 씨는 "취업 실패 후 자연스럽게 고립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배 씨는 "이력서를 이곳저곳 넣어보고 국민지원취업제도를 이용해서 세무 관련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잘 안됐다"며 "자격증도 다 땄지만, 그때는 이미 은둔이 오래 진행됐을 때라 공포증이 생겼다. 이력서를 넣을 때도 벌벌 떨었다. 면접이 무섭고 서류 거절이 무섭고, 연락이 오지 않는 것 자체도 무서웠다"고 토로했다.

김지은(29·가명) 씨는 "직장을 구해 일을 할 때마다 남들보다 실수가 잦았다. 꼼꼼하지 못하고 느리다며 자주 혼났고 잘린 적도 많다"며 "이런 일이 계속 쌓이다 보니 스스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졌고, 점점 집에만 있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청년세대의 경제 활동은 필수적이지만, 고립은둔으로 취업 전선에서 탈락하면 기본적인 삶을 누리기 어려워진다. 또한 사회적으로 볼 때도 저출산으로 가뜩이나 줄어들고 있는 청년층이 결혼과 출산으로 쉽게 이어지지 못하면서 국가의 미래마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같은 세대 속에서 일하는 부류와 아닌 부류로 나뉘게 되면 세대 내 갈등까지 유발될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옳지 못 한 선택까지…'삶'을 선택해 다행이야 

우리나라 3가구 중 1가구는 1인 가구다. 혼자 사는 고립은둔 청년도 덩달아 늘면서 각종 사회 문제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됐던 장모 씨는 은둔 기간 중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한 경험이 있다. 가정폭력에 더해 학업 실패까지 겹치면서 생긴 극심한 우울증이 원인이었다. 블라인드 줄이 장 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는 "다른 사람들만큼 잘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배우는 것도 느리고 시작도 늦고,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었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2020년 3월 제대 이후 은둔생활을 하는 김찬기(26·가명) 씨는 "친구들, 부모와의 연락을 끊었다. 배고프면 며칠을 고민하다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사 왔는데 그 순간도 진짜 무서웠다"며 "그러다 고독사 관련 기사를 보게 됐는데, 나도 '이 길을 걷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죽을지 살지를 결정해야 할 기로에서 죽음은 모르지만, 삶은 예측할 수 있으니까 사는 쪽을 선택해 노력하기로 했다"며 용기를 냈다.

지난 1월 12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청년의 고립 해소를 위한 정책 토론회' 모습. (사진=허운연 기자)
지난 1월 12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청년의 고립 해소를 위한 정책 토론회' 모습. (사진=허운연 기자)

◆"의지박약?"사회의 인식 바뀌어야

고립은둔 청년 중에는 용기를 내서 방 밖으로 나왔거나, 나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경우도 있다. 복지관 등으로부터 도움을 얻고, 같은 처지의 고립은둔 청년들에게 기대고, 스스로의 의지를 통해 현 상황을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이들의 탈출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사람들은 곳곳에 있다. 그들은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부터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청소년과 청년에게 심리 멘토링을 진행하는 꾸미루미 최성식 소장은 "아직 고립은둔 청년이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생소하다. 이 때문에 자신이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숨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 소장은 "많은 사람이 고립은둔 청년들을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혜원 파이나다운청년들 이사장은 "은둔 경험이 있다고 하면 '젊은 애가 왜 그러고 있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우리 사회"라며 "은둔의 계기가 복잡한 만큼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은둔이 나쁜 경험이 아니라는 인식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옥란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장은 "성취감을 부여해 주고 자신감을 느끼게 해줘서 위축에서 벗어날 계기를 제공해야 한다"며 "회복된 추억을 몸이 기억하도록, 사회 나가서 그 기억으로 다시금 회복하고 일어설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료=두더지땅굴 홈페이지 캡처)
(사진=두더지땅굴 홈페이지 캡처)

◆5월 '가정의 달'…탈출 돕는 곳곳의 손길 느낄 때  

청년들 스스로 자립 의지를 키울 수 있는 온라인 공간도 있다. 사단법인 씨즈가 운영 중인 '두더지땅굴'은 고립은둔 청년들이 땅 위로 나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본인과 같은 상태의 청년들에게 근황과 안부를 묻고 함께 소소한 활동을 벌이면서 서로를 돕고 있다. 지금도 두더지땅굴에서는 많은 고립은둔 청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같은 집단에 소속된 것만으로도 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정부도 고립은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4월 11일에는 위기청소년 특별지원 대상에 은둔형 청소년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청소년복지 지원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위기청소년 특별지원은 '청소년복지지원법' 제14조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만 9세 이상 만 24세 이하 위기청소년에게 생활지원, 치료비, 심리검사 상담비, 학업지원비 등을 현금 및 물품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 지역사회 청소년사회안전망을 통해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청소년 발굴부터 확인, 사례관리까지 통합적인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고립은둔 문제를 돕는 여러 기관은 과거부터 존재했고 정부도 고립은둔 해결에 나서고 있다. 이제 '탈출'을 위한 그들의 의지가 중요하다. 물론 이러한 권유조차도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다만 찬란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스스로를 위해 '용기'를 가져봄 직한 따뜻한 5월이다. 당신들의 '탈출'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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