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4.16 11:31
美 관세 압박에 포스코·현대제철 '적과의 동침' 추진
동국제강, 짠물경영 와중에 경쟁사 계열사 인수 검토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중국산 저가 철강재 공세 및 건설 등 전방산업 불황, 미국발 관세 위협 등 '삼중고'에 시달리는 철강업계에 이례적인 '이합집산'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오랜 악연을 이어간 회사들이 합작을 논의하고, 경쟁사 자회사 인수를 검토하는 등 사례가 없었던 진풍경을 야기하고 있다.
16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건설할 예정인 전기로 제철소에 대해 지분을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포스코의 구체적인 투자 방식이나 액수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
이는 국내에 고로를 보유한 1·2위 철강사들이 대형 시장인 미국에서 제철소 관련 '빅딜'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포스코나 현대제철 모두 미국 수출 비중이 적지 않고,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25% 관세로 부담이 커진 만큼 현실성이 충분하다는 시각도 나온다.
그러나 정작 동종 업계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업계 라이벌 이상의 오랜 불구대천 관계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시절부터 일관제철소 건립에 따른 그룹 수직계열화를 꿈꿔왔지만, 번번이 정부의 인가를 받지 못했다. 현대가(家)와 정치권의 악연도 있지만, 포스코(당시 포항제철)가 국내 철강 공급과잉을 이유로 현대차그룹의 제철소 건립을 막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2010년 들어서야 당진에 고로를 세우면서 일관제철소의 꿈을 이뤘다. 그러나 그 전까지 철강재 수급을 포스코에 의존했던 정몽구 명예회장은 포스코에 대한 몇 차례 격분을 드러냈다는 후문도 있다.
이후에도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서로의 제품과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한 무수한 소송전을 이어갔다. 물론 양사는 국내 철강업 전체 위기로 공동소송을 진행하거나, 자연재해가 있을 때는 일시적으로 손을 잡기는 했다. 그러나 공식석상에서 왕래는 거의 없었고 서로에 대한 앙금도 수장들끼리 공개적으로 푼 적도 없다.
한 철강업체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양사는 겉으로는 '순망치한'의 관계를 내세워 왔는데, 막상 근본사업인 제철소 관련해서는 협력 사례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현대제철이 재정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미국 관세 대응은 해야겠고, 정의선 그룹 회장도 미국에 8조원 이상을 투자해 제철소를 짓는다니 앙숙일지라도 공동투자 정도는 제안할 여지는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제철소 운영 방식이나 제품 품질·단가·납품, 심지어 기업 문화까지 충돌하는 점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미국 제철소 합작이 성사되더라도 화학적 결합은 무리"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말했다.
이와 관련해 포스코 관계자는 "미국 투자 관련해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기는 하지만, 현 시점에서 확정된 바는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다.

동국제강의 경우, 전기로 라이벌 업체인 현대제철의 단조 제조사 현대IFC 인수를 위한 협상을 실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제강은 중국산 저가 철강재 덤핑과 전방산업인 건설 불황으로 전기료가 저렴한 밤에만 철근공장을 가동하고 있을 정도로 '짠물 경영'을 실시 중이다.
그럼에도 현대IFC를 인수 검토 대상에 올린 것은 이 회사가 조선용 단조제품과 방산·에너지 등에 고부가가치 제품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불황에도 어떻게 해서든 수익성 확대를 꾀해야 하는 동국제강으로서는 조선·방산 같은 유망 분야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재무구조 안정화 차원에서 이미 지난 2024년부터 현대IFC 매각을 추진하고 있었던 현대제철은 때마침 미국 제철소 건립 자금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제철도 2015년 포트폴리오 다각화 차원에서 현대IFC를 인수하기는 했지만, 경쟁사에 매각을 검토할 정도로 상황이 급하다.
역설적이게도 극심한 불황 등 불투명한 대내외 변수가 철강사들의 이해관계 톱니바퀴를 맞추고 있는 셈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현대IFC 인수와 관련해 "철강 사업 경쟁력 강화와 신성장 동력 발굴 및 확장 측면에서 다양한 사업을 검토 중이기는 하지만,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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