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06.26 13:00

SK이노베이션의 SK엔무브 상장 철회 기점
李-민주당, 대기업 자금조달 남용 방지 가속화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정부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정부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최근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상장 철회를 기점으로 당분간 대기업들은 상장(IPO) 및 유상증자, 자사주 활용 교환사채(EB) 발행 등에 나서길 주저할 것으로 보인다.

모두 자본시장에서 기업이 자금조달을 하기 위한 적법한 수단이지만, 대기업 등에서 주주 전체가 아닌 특정 주주 이권을 위해 남용된 경우가 많아 이재명 정부가 조만간 상법개정안 등을 통해 이를 정상화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전날 이사회를 통해 재무적투자자(FI) 에코솔루션홀딩스가 보유 중인 자회사 SK엔무브(옛 SK루브리컨츠) 주식 1200만주(8592억6000만원) 전량을 오는 7월 2일 장외 취득키로 했다. 이로써 SK엔무브는 SK이노베이션의 100% 완전 자회사로 편입된다.

SK엔무브는 윤활기유 및 윤활유 제조 업체로, 불황을 타지 않아 알짜배기 자회사로 손꼽힌다. 그룹 차원의 리밸런싱 중인 SK이노베이션은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배터리 자회사 SK온을 살릴 목적으로 그동안 네 차례나 SK엔무브 상장(IPO)을 통한 자금조달을 추진했다.

하지만 SK온의 재무위험 신호에도 상장을 포기하고 자회사 편입을 선택한 것은 그동안 일었던 '중복 상장' 내지 '쪼개기 상장'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SK엔무브의 사업은 모기업인 SK이노베이션과 겹치는 만큼 상장이 이뤄지면, 기존 SK이노베이션 주주가치 희석이 우려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 초기부터 이를 방지한 주주가치 제고안을 담은 상법개정안을 추진 중인 만큼 정권과 부딪힐 필요도 없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금융투자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복 상장은 쪼개기 상장"이라며 "쪼개기 상장 시 모회사 일반 주주에게 신주를 우선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분위기를 의식한듯 SK이노베이션 측도 "최근 자본시장 분위기와 회사 제반 사정 등을 고려해 IPO 프로세스를 잠정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당선된 이상 SK뿐 아니라 LS 등 비슷한 논란을 겪고 있는 대기업들도 상장에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LS도 LS전선·LS이브이코리아·LS엠트론·LS파워솔루션 등 비상장사들의 상장을 대거 추진 중인데, 이 중에는 과거 LG화학에서 물적분할 된 LG에너지솔루션처럼 같은 회사에서 떨어져 나와 모기업 주주가치 훼손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계열사도 있다.

구자은 LS그룹 회장 본인은 올해 "중복 상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든지, "중복 상장이 문제면 주식을 사지 않으면 된다"라고 발언하는 등 굳이 논란을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법개정안의 국회 처리 후에는 구 회장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전망이다.

최근 SK엔무브 상장을 포기한 SK이노베이션 서린동 사옥. (사진제공=SK그룹)
최근 SK엔무브 상장을 포기한 SK이노베이션 서린동 사옥. (사진제공=SK그룹)

현재 신정부 및 여당인 민주당이 추진 중인 상법개정안은 ▲이사 충실 대상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총주주'로 확대 ▲전자 주주총회 도입 의무화 ▲독립이사 선출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의결권 3%로 제한 ▲대규모 상장회사 집중투표제 강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이 담겼다.

중복 상장은 이사 충실 대상 확대 조항에 배치될 수 있다. 해당 조항에 걸릴 수 있는 것은 중복 상장 뿐 아니라 유상증자도 마찬가지다. 증자에 따라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가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중 한화에어로스페이스나 삼성SDI는 소액 주주들의 충분한 컨센서스 형성 없이 기습 유증을 공시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호실적이었던 데다, 유증 목적도 뚜렷치 않아 금융감독원에 두 차례에 걸쳐 정정공시 요구를 받기도 했다.

이밖에도 수많은 대기업이 그동안 관행적으로 자금조달을 위해 주주 동의가 필요 없는 이사회를 통해 불투명한 목적의 유증 등을 실시해 왔다.

지난 5월만 해도 LS마린솔루션은 우선 신규시설 투자 발표 등 호재성 공시를 낸 직후 바로 유증 공시를 내 논란이 인 바 있다. 물론 이와 관련 LS마린솔루션 측은 "한국거래소 및 금융감독원 검토 및 협의 아래 시설투자 건(신조선 구매) 공시 후 해당 시설투자의 자금 조달을 유증으로 하는 계획을 공시했는데 거래소 및 금감원 절차상 사유로 10분 이상의 시간차가 발생해 투자자들의 오해를 산 것"이라고 해명했다.

상법개정안 명시 내용은 아니지만, 신주를 발행하지 않고 상습적으로 자사주를 담보로 EB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관행도 옅어질 전망이다. 이재명 정부 및 민주당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방향으로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상법개정안이나 자본시장법 개정을 무작정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나 소송 남발 방지 장치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학자는 "자본시장 시스템이 건강하고 투명해져야 투자자들도 안심하고 기업 상장이나 유증에 참여하는 법이고, 그러면 오너나 대주주도 투자금 조달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경영계에서는 상법개정안 등이 통과될 경우 경제가 위축될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보완만 잘하면 오히려 자금조달이 더 원활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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