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8.27 11:27
美 자동화 허브 구축 이어 국내도 점진적 실현 계획
노조 인력 굳이 필요하나…강력 교섭 카드 쥔 현대차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한국과 미국의 정상회담 기간 동안 미국에 50억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강대 강' 충돌을 빚고 있는 현대차 노사 관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추가 투자의 핵심이 로봇인 만큼, 국내외 공장 완전 자동화로 이어지면 더 이상의 고용 보장 확대가 필요 없다는 의미로 노동조합을 자극할 수 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전날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연계해 미국 현지에 3만대 규모의 로봇 공장을 신설한다는 내용을 포함해 올해부터 4년간 미국에 260억달러(약 36조1530억원)를 투자키로 했다.
이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3월 백악관에서 발표한 미국 투자 금액 210억달러에서 50억달러 늘어난 규모다. 당시 정 회장은 미국 자동차 생산라인 증설 및 제철소 건립 등을 발표했고, 이번에는 자사 로보틱스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중심으로 한 로봇 공장 신설 내용이 추가됐다.
현대차그룹은 로봇 공장 설립 시기와 장소는 확정하지 않았지만,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주력 제품인 ‘아틀라스’와 ‘스팟’ 등이 생산될 예정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인 아틀라스는 조립 및 물류 분야에서 잠재적인 인력 대체 효과가 크다. 엔진 커버와 같은 부품을 옮기거나, 복잡한 조립 공정을 수행하는 데 투입될 수 있다. 이미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 공장에 아틀라스 로봇을 투입해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4족 보행 로봇인 스팟은 주로 품질 검사나 안전 관리와 같이 사람이 접근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구역에서 활용된다. 예컨대 조립이 끝난 차량의 미세한 결함을 검사하거나, 생산라인 내의 이상 징후를 감지하는 것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아틀라스는 단순 반복 작업만 가능하던 기존 개념을 넘어 관리자가 입체적인 수정오더를 내려도 이를 100% 가까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스팟 같은 경우, 고려아연 등 국내 기업들도 받아들이는 추세"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을 국내 생산라인에도 도입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연말부터 생산 거점에 '올 뉴 아틀라스' 휴머노이드 로봇을 시범 투입할 목적으로, 현재 시험운용 중이다.
이러한 시도가 국내에도 성공적으로 안착하면 불리해지는 것은 노조다. 사측 입장에서는 파업이나 급여 인상을 요구하는 인력들 대신 불평불만 없이 24시간 풀가동해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안전도 챙길 수 있고, 인건비까지 절감할 수 있는 로봇을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로봇 등을 포함한 미국 투자 확대 관련 현대차그룹이 갖고 있는 비전은 표면적으로는 노조 문제와 하등 관계는 없다.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르면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자동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추가투자로 현지 생산 능력 확대 및 공급망 내재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미래성장동력인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매개체로 소프트웨어 중심의 모빌리티 기업(SDV)으로 전환하려는 계획이다.

현대차 노조는 현재 사측과 임단협을 진행 중인 만큼, 당장은 로봇 투자 계획에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노조 불안의 핵심은 역시 고용 불안정성인데, 공장 자동화 시 국내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정부 측에서도 난색을 표한 바 있다.
과거에도 기아가 국내 공장 생산라인 자동화를 시도했었지만, 이같은 이유를 내세운 노조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이 우선은 미국을 중심으로 로봇 생산 허브를 구축한 뒤, 국내는 점진적으로 자동화한다는 전략으로 선회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로봇 투자 확대 계획은 국내 산업계 노사관계의 바로미터가 되는 현대차 임단협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현대차 노조가 매번 고용 보장 확대 등을 담은 임단협 요구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측에 휘두를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파업권이다. 이미 현대차 노조는 올해 파업권도 확보한 상태다.
복수의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다만 이제는 사측도 24시간 가동되고,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도 않는 로봇이라는 강력한 협상카드를 거머쥔 셈"이라며 "현재까지는 사측이 노조와 대화로 풀어간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추후 로봇 기술 투자가 확대될수록 노조 파업이 생산에 미치는 영향은 줄어들어 장기적으로 노조 교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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