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백종훈 기자
  • 입력 2024.07.24 14:45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백종훈 기자]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보험 약관 대출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소위 '불황형 대출'로 꼽히는 보험계약 대출의 몸집이 커지면서 보험계약 해지로 이어지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보험사들도 어려운 상황은 마찬가지다. 보험사들은 지난 1990~2000년대 다수의 고금리 확정형 저축성 상품을 판매했다. 은행의 예·적금 상품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고금리 확정형 상품을 판매했으나, 최근 기준금리가 상승하면서 이차 역마진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보험계약에 웃돈을 얹어 보험사가 되사는 '보험계약 재매입' 논의가 한창이다.

◆보험계약 재매입, 경제불황 속 보험소비자·보험사 모두에 '윈윈'

24일 업계에 따르면 보험계약 재매입은 보험사가 보험계약자로부터 보험계약을 다시 사들인 뒤 해당 계약을 종료시키는 것을 뜻한다. 

국내 보험시장에서는 아직 법제화가 되지 않았다.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을 임의로 종료할 수 있는 반면 보험사는 보험계약을 임의로 없앨 수 없어 생겨난 개념이다.

이는 국내 보험사들이 2000년대 초반까지 판매한 '고금리 연금보험' 때문에 필요성이 처음 제기됐다. 

시장 금리와 자산운용 수익률이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 떨어지면서 보험사 부채 상환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진 탓이다.  

보험계약 재매입이 이뤄지면 보험사 입장에서 빚 상환 부담이 큰 보험계약을 소멸시킴으로써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보험계약자 즉, 보험소비자 입장에서는 보험계약 해약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자신의 보험금을 프리미엄까지 더해 보호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지금의 국내 보험시장 상황은 2000년대 초반보다 더 어려운 형국이다. 보험계약 재매입 논의에 다시 불이 붙은 까닭이기도 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험사의 부실채권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0.74%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말보다 0.51%포인트 높은 수치다. 

가계대출 부실채권 비율과 기업대출 부실채권 비율은 각각 0.37%, 0.91%를 찍었다. 특히 가계대출 부실채권 비율은 전년 말보다 0.08%포인트 오른 수치다. 이 중 가계대출 연체율은 0.52%로 전년 말보다 0.15%포인트 상승했다.

보험계약 대출은 올 1분기 70조1000억원을 찍었다. 이는 작년 1분기 68조2000억원보다 2.9% 증가한 액수다. 

보험계약 대출은 보험소비자가 가입 보험상품의 해약환급금 범위 내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제도다. 별도의 대출심사가 필요 없는 데다가 신용점수 하락의 위험도 거의 없다. 중도상환수수료도 없어 경기가 나쁠 때 급전 마련 수단으로 쓰인다. 

보험계약 해약 건수는 지난해 기준 1만2922건을 기록했다. 2021년 1만1466건, 2022년 1만1654건에 이어 갈수록 늘어나는 모양새다. 

보험상품을 중도에 해약하는 사례가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보험소비자 경제생활이 힘들다는 걸 의미한다. 원금을 손해볼 수 있음에도 급전이 필요해 보험상품을 깬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수익과 부채를 모두 시가로 평가하는 IFRS17의 도입으로 과거 고금리를 약속했던 장기저축성 보험상품의 부채 부담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며 "실제로 2022년에 실시한 CEO 대상 설문조사에서 보험사 CEO 94.6%가 보험계약 재매입 등 사업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고 설명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5월 30일 오후 서울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금융감독원-보험사 CEO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백종훈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5월 30일 오후 서울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금융감독원-보험사 CEO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백종훈 기자)

◆"보험계약 재매입, 보험사 건전성에 양날의 검…충분한 검토 수반돼야"

이에 금감원은 지난해 업무계획에 보험계약 재매입을 포함시키면서 "연말까지 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법제화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목표 달성을 위해 보험사들과 TF를 꾸려 검토와 논의도 진행했다.

벨기에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역마진으로 인한 보험사의 지속가능성과 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해 보험계약 재매입 제도를 시행 중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다만 보험계약 재매입은 국내에서 여태 시행된 바 없다. 시행 과정에서 소비자피해 등 부작용을 어떻게 방지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보험사가 보험계약을 보험소비자로부터 다시 매입하는 과정에서 보험소비자 권리를 해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험계약 재매입 도입이 과거에 무산된 것도 일부 모집인이 승환계약을 유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해서다.

또 보험계약 재매입은 보험사가 특정 보험상품에 가입한 자를 대상으로 해지환급금에 더한 프리미엄을 제공하고 이에 응한 자의 보험계약을 종료한다는 점에서 '보험계약 이전'과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유의해야 한다.

보험계약 이전은 보험소비자 의사와 관계없이 보험사 간 계약에 따라 모든 보험계약자들의 보험계약이 타 보험사로 넘어가 유지되는 형태를 띈다.

이외에도 보험계약 재매입 도입의 고려사항으로 ▲프리미엄 결정 ▲정보 제공 ▲편향된 정보 전달 방지 ▲보험계약 재매입 후 취소 등이 제시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보험계약 재매입에 따른 프리미엄은 해당 보험상품으로 인해 장래에 발생할 현금흐름(보험이익)의 현재가치를 기준으로 하고 장래 보험이익의 일정 비율을 지급하는 방식이 타당하다.

보험계약 재매입은 전문가인 보험사와 비전문가인 보험계약자 사이의 거래이므로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나와 있는 설명의무와 적합성 원칙에 따른 정보 제공과 재매입 권유가 이뤄져야 한다.

편향된 정보 전달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보험사 혹은 설계사가 아닌 이해관계가 자유로운 제3의 기관이 보험계약 재매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보험계약 재매입은 보험사가 제안한 조건에 따른 보험계약 종료를 보험소비자가 받아들이는 형태인 만큼 판매에 준하는 소비자 취소 권리를 보장할 필요도 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는 보험상품 가입자들의 위험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며 "따라서 보험사 재무적 안정성 제고는 보험사뿐만 아니라 가입자들에게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차원에서 보험계약 재매입은 보험 부채를 줄이는 것 외에 보험사의 전반적인 수익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역선택이 발생할 경우 오히려 보험사 건전성을 해칠 수도 있어 충분한 검토가 수반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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