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5.04.18 15:09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 (사진제공=동원그룹)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 (사진제공=동원그룹)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이 그룹 매출의 절반을 담당하는 동원F&B의 상장폐지를 예고한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왜 하필 지금 시기에, 이 가격으로 하는지'라며 당위성을 의문시하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MBK파트너스 등 사모펀드를 중심으로 상장폐지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점을 비춰 본다면, 사실상 기존 주주를 강제로 쫓아내고 대주주의 지배권한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관측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18일 동원그룹에 따르면, 그룹 지주사인 동원산업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포괄적 주식교환 계약 체결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동원산업은 보통주 신주를 발행해 동원F&B 주주에게 1(동원산업)대 0.9150232(동원F&B)의 교환 비율로 지급할 예정이다. 주식교환이 끝나면 동원F&B는 동원산업의 100% 자회사로 편입되고 상장폐지된다.

양사는 주식교환 안건을 의결하기 위한 주주총회를 6월 11일 잠정 개최할 예정이다. 반대하는 주주는 그전까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청구 가격은 관련 법령에 따라 동원산업 3만5024원, 동원F&B 3만2131원으로 결정됐다. 동원F&B 주주들은 매수청구가격 3만2131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동원산업 주식으로 받을 수 있다. 동원F&B 1주당 동원산업 0.915주가 책정됐다. 동원산업의 신규 발행 주식 수는 주식매수청구가 종료되는 7월 1일 이후 확정될 예정이다.

동원그룹은 이런 결정이 동원홈푸드와 스타키스트, 스카사 등 식품 관련 계열사를 한데 묶어 글로벌 식품사업의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목적이라 밝혔다. 그룹 식품사업의 해외 매출 비중을 22%(지난해 기준)에서 오는 2030년까지 40%로 늘리겠다는 장밋빛 구상이다. 여기에 중복상장 문제를 해소할 수 있으며, 자금력 부족으로 동원F&B가 단독 추진할 수 없었던 대형 인수합병(M&A)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고 부연했다.

다만, 자본시장에서 상장 폐지는 심사숙고가 필요한 중요 사안으로 보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기업 이미지를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 안정성이 상장 상태보다 더 중요해졌다는 확실한 당위성이 있지 않다면, 투자자들을 볼모로 오너 사익을 추구한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다수 상장폐지는 좋지 못한 선례로 이어졌다.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필두로 부진한 주가를 부양하기 위한 상폐 후 재상장이나, 민감한 내부정보 통제, 상장 유지를 위한 비용 절감 등이 주된 목적으로 지목된다. 특히 김 회장은 지난 2022년 흡수합병을 통해 동원그룹을 장악했기 때문에 이번 동원F&B 상장폐지가 '두 번째 꼼수'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당시 김 회장은 상장사 동원산업과 비상장사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흡수합병을 통해 동원그룹 경영권을 단박에 거머쥐었다. 김 회장은 합병 전 동원엔터프라이즈 지분을 68.27%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양 사 합병이 이뤄지면서 그는 동원산업 지분 없이도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이 역량을 모으고 있는 국내 최초의 완전 자동화 항만 '동원글로벌터미널부산(DGT)' 전경. (사진제공=동원그룹)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이 역량을 모으고 있는 국내 최초의 완전 자동화 항만 '동원글로벌터미널부산(DGT)'의 전경. (사진제공=동원그룹)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집단 반발도 일어났다. 소액주주들은 양 사 합병이 경영권 장악 등의 사익을 위한 합병이더라도 적당한 수준의 보상이 이뤄지면 이유를 묻지 않겠다는 태도였지만,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비율은 1대 3.8385530로 산정됐다.

이들은 합병 비율이 김 회장에게 노골적으로 유리하게 산정됐다며 거세게 반발했고, 일부 소액주주는 소송까지 제기했다. 반발 기류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자, 동원그룹은 1대 2.7023475로 조정했지만, 이마저도 소액주주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김 회장이 최근 사모펀드들의 상장폐지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김병주 회장이 이끄는 MBK파트너스는 최근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로 인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지만, 이전에도 투자 기업들의 '벼락 상장폐지'를 단행하면서 소액주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소액주주들은 MBK가 투자 기업의 상장폐지를 시도하기 전에 의도적으로 주가를 눌러 낮은 가격에 지분을 확보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올해 1월 금융당국은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상장폐지가 활용된다는 지적이 뒤따르자 '상장폐지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올 하반기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동원그룹이 동원F&B 상장폐지를 상반기 전에 마무리 지은 것은 해당 제도 실행과 연계되는 지점이다. 이런 배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이번 동원F&B 상장폐지는 소액주주의 원성을 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동원산업이 정기주주총회에서 중간배당 규정을 신설하는 정관 변경안을 마련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동원산업은 김 회장을 비롯한 김재철 명예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87.82%로 압도적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 상속세 조달 목적으로 배당 확대에 나서는 사례처럼, 김 회장의 배당 확대 기조는 현금 확보의 필요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김현중 법무법인 신진 대표변호사는 "동원그룹 입장에서는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이 자본시장법에 따라 계산된 가격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소액주주들 입장에서는 왜 하필 지금에, 이 낮은 가격으로 밀어붙이느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아무래도 동원F&B의 현금 창출 능력이 좋다 보니 이제 동원산업 100% 자회사가 되면 배당 집행은 더욱 쉬워질 것이고, 주주총회 결의도 생략할 수 있어 중요 사안을 독자 결정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원그룹 관계자는 "동원그룹 포트폴리오 중 식품사업군의 글로벌 진출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며 "동원F&B와 동원홈푸드는 연간 매출이 5조원 이상이지만, 내수 시장에 집중되면서 향후 성장 정체와 영업이익률 하락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지금이 글로벌 시장에 힘을 쏟을 적기라고 판단해 동원F&B의 상장폐지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대기업 지주사는 중복 상장 이슈가 있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항상 투명성 문제를 들고 나온다"며 "글로벌 스탠다드는 지주사만 상장하고 자회사는 비상장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동원F&B가 동원산업 100% 자회사로 편입되면 중복 상장 이슈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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