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10.13 16:28
소량 장비 교체에도 예외 적용
하반기 예산 소진 행위 두드러져

[뉴스웍스=정희진 기자] 정책금융 기관인 기업은행이 정부의 '재정 조기 집행'을 방패 삼아 예산을 무리하게 소진하려는 '긴급 입찰'을 남발하면서 물의를 빚고 있다. 법령상 요건에는 부합하지만, 실질적 긴급성이 크지 않은 사업까지 예외 절차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제도 취지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13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최근 '시장서버시스템 노후 서버 및 소프트웨어(SW) 교체 사업'(공고번호 BD251001003) 을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35조 제4항 제1의2'에 따라 긴급입찰로 공고했다. 노후 시장 서버 교체 사업을 추진하면서 '예산 조기집행'을 사유로 긴급입찰을 진행한 것.
이 조항은 '국가의 재정정책상 예산의 조기집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입찰공고 기간을 단축(7일→5일)할 수 있도록 한 예외 규정이다.
문제는 이번 사업이 서버 2대(약 6090만원 규모)를 교체하는 소규모 물품 구매임에도 긴급입찰로 처리됐다는 점이다.
기업은행은 이번 조치가 법령상 정당하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은행 관계자는 "이번 사업 취지는 시장정보시스템 노후 서버·운영체제(OS)·소프트웨어를 교체해 금리·환율정보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며 "동일 회계연도 내 기존 예산 편성안에 따라 집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적으로 요건은 충족하지만, 긴급입찰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성원 변호사(법무법인 장원)는 "긴급입찰은 사업 지연 시 공공 손실이 예상되거나, 정책·재정적 필요로 조기 집행이 불가피한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며 "단순 장비 교체까지 긴급으로 분류하는 것은 제도의 예외성을 흐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본지가 알리오를 통해 확인한 결과, 기업은행은 최근 두 달 동안 총 26건의 긴급입찰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물품 구매가 15건, 유지관리 사업이 11건으로, 모든 공고에서 예산 조기집행이 사유로 명시됐다.

특히 하반기 들어 긴급입찰이 급격히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다.
최근 3년 동안 상·하반기 긴급공고 건수를 분석한 결과, 2023년에는 상·하반기 합계 114건이었으나, 지난해에는 346건으로 세 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2025년)는 10월 기준 이미 229건에 달하며, 이는 상반기(151건)의 절반 이상(51.7%)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장 변호사는 "기관 입장에서는 예산을 남기면 불용액이 발생해 비효율 기관으로 평가받고, 다음 해 예산이 삭감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연말이 다가올수록 예산을 신속히 집행하려는 유인이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반기에 집중되는 긴급입찰은 사실상 '예산 몰아쓰기' 현상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며 "예산을 다 써야 다음 해 예산이 유지된다는 구조가 고착화되면, 긴급입찰은 효율 제도가 아니라 불필요한 사업을 양산하는 장치로 전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