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희진 기자
  • 입력 2025.06.04 14:39

베트남 정부 인가서 접수증 교부…"부동산·수출 부진 정책금융으로 타개"

베트남과 한국이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을 매개로 협력을 하고 있다. (출처=미리캔버스 AI)
베트남과 한국이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을 매개로 협력을 하고 있다. (출처=미리캔버스 AI)

[뉴스웍스=정희진 기자] 7년 동안 닫혀 있던 베트남의 외국계 은행 인가가 재개됐다. 부동산 부실과 수출 둔화라는 이중 위기 속에서 베트남과 한국은 정책금융을 매개로 생존 전략을 재설계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2018년 8월 '경제 규모 대비 은행 포화'를 이유로 외국계 은행 신규 라이선스 발급을 제한·중단한 바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베트남 중앙은행(SBV)은 중소기업은행(기은)과 산업은행(산은)에 외국계 은행 라이선스 절차의 첫 단계인 인가서 접수증(CL)을 교부했다. 각각 2017년, 2019년 인가를 신청한 이후 8년, 6년 만이다.

베트남 금융시장은 부동산 침체와 기업 부실로 리스크가 확산 중이다. 베트남 통계총국(GSO)에 따르면 지난해 휴업 및 폐업한 기업 수는 17만개를 넘어섰고, 부실채권(NPL) 비율은 잠재 부실을 포함해 9%에 달했다. 이는 통상 관리 가능한 3%의 세 배 수준이다.

코로나19 팬데믹, 헝다그룹 파산, 태풍 '야기' 등 연쇄 충격이 이어지며 경제 회복도 지연됐다. 2020년 GDP 성장률은 2%대로 추락했고, 수출 증가율은 0.5%에 그쳤다. 다오 민 투 베트남 중앙은행 부총재는 지난해 3분기 기자회견에서 "대차대조표상 부실채권(NPL) 비율이 5%에 육박하고, 잠재 부실까지 포함하면 9% 수준"이라며 "태풍 피해 등으로 농업·양식업 부문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로 미중 갈등이 점화되며 베트남 수출 환경도 악화됐다. 베트남은 46%, 한국은 25%의 관세 부과 대상이 됐다. 라미령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은 "미국은 관세 인하보다 중국산 제품의 베트남 우회수출 차단에 집중하고 있다"며 "베트남은 원산지 규정 통제와 무역사기 감시를 강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트남 정부는 이런 내·외부 리스크를 일거에 해소하기 위한 복안으로, '한국'과 '특수은행'이라는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한 기은과 산은에 손을 내밀었다.

우선 베트남 정부가 민간은행이 아닌 정부 지분 100% 특수은행을 선택한 점이 주목된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이라는 특수성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국이 선택된 배경도 눈길을 끈다. 베트남과 한국은 서로 3위 교역국이며, 1·2위 교역국인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 당사국이다. 고래 싸움 속에서 실질적 경제 파트너인 한국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협력국으로 부상했다. 한국은 베트남의 누적 해외직접투자(FDI) 1위국이기도 하다.

이번에 CL을 교부받은 기은과 산은은 각각 중소기업 금융, 인프라 금융에 특화돼 있다. 다만 현재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은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1만개)은 물론 베트남 로컬 기업 지원도 계획하고 있고, 산은은 인프라 금융을 통해 양국 경제 성장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현지 기업 대상 영업 확장 범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향후 최종 인가가 완료되면 양국은 협력을 통해 베트남은 외화 유동성 안정과 금융 시스템 신뢰 제고를, 한국은 '중국+1' 전략 가속화와 수출시장 다변화를 추진할 수 있다. 특히 베트남은 가입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유럽연합-베트남 자유무역협정(EVFTA) 등 FTA 네트워크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CL 교부는 시작에 불과하다. 예비인가와 본인가 단계를 거쳐야 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소 1년에서 1년 반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책 기조와 규정이 유지된다면 무리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확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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