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6.27 08:00
은행권, 법적 리스크·형평성 고려해 대응 방안 검토

[뉴스웍스=정희진 기자] 벨기에부동산 펀드 사태 이후 한국투자증권이 내부 기준에 따라 자율 보상에 나선 가운데, 국민은행과 우리은행도 기준 정비에 착수했다. 투자자 보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법적 해석과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란 속에 대응 방식을 신중히 조율하는 모습이다.
◆한투증권 선제 보상…타 판매사는 검토 단계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한국투자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2호(파생형)'와 관련해 자체 기준을 바탕으로 자율 배상을 진행 중이다. 사측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체 피해자의 70% 이상에 대해 보상이 이뤄졌다. 내부 책임 인식, 고객 신뢰 회복, 브랜드 가치 보호 등의 이유로 자율 배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이 배상은 해당 펀드가 여전히 운용 중인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해 5월 23일 수익자총회를 통해 신탁 기간은 2029년까지 연장됐고, 환헤지 전략도 환노출 방식으로 전환됐다. 법적 손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질 손실률이 99.9%에 달한 점을 감안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셈이다.
다른 판매사들은 자율 보상 여부에 대한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다. 일부 피해자들은 "한 은행이 (자신들에게) 당국 판단 없이 자율 배상에 나설 경우 자본시장법상 배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판매사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로 자본시장법 제55조는 투자자에게 손실을 사전에 약속하거나 사후에 보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어, 판매사들이 법적 리스크를 우선 고려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조항이 자율 배상까지 포괄하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이미 손실이 발생한 이후 내부 기준에 따라 이뤄지는 자율 배상은 '손실 보전의 약속'이 아닌 경영상 판단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 노윤상 변호사(해당 펀드 단체소송 대리)는 "판매사들이 자율 배상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결단을 촉구했다.
은행 관계자는 "배상의 경우 금감원 등 당국의 제재 전에 자율 배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검토 중"이라며 "해당 펀드 판매 과정을 점검하고 있으며, 고객 보호 방안도 함께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해도·투자 경험에 따른 보상률…기준 형평성도 쟁점
한국투자증권이 제시한 보상 기준은 기본 배상률 50%에 가산·차감 요소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고령자, 중위험 이상 금융상품 가입, 설명서 미교부, 투자성향 변경 유도, 대필 의심 등의 항목에 따라 최대 45%까지 가산점이 붙는다.
투자 이해도가 높거나 유사 상품 투자 경험이 있는 경우에는 각 10%씩, 최대 20%까지 감점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기준이 실질 손실률이나 정보 접근성보다는 형식상 투자 경험에 치중돼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투 관계자는 "1차 가입 후 2차에도 가입한 고객이 많다"고 설명했지만, 구조나 리스크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반복 투자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은행 관계자는 "배상기준의 경우 한투증권의 것을 '참고만 할 수 있을 뿐' 아직 내부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며 "현 정부가 '청렴'과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는 기조인 만큼, 투자 권유 단계 등 판매 과정을 내부적으로 더욱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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