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한익 기자
  • 입력 2024.11.07 06:00
김정은(왼쪽 세 번째)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왼쪽 네 번째) 전 대통령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회동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김정은(왼쪽 세 번째)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왼쪽 네 번째) 전 대통령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회동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회의 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면서 더 나은 핵 협상을 할 것이다."

2016년 대선 유세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집권 1기 때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하노이,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전례 없는 수준의 '북미 대화'를 이끌어 낸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한국을 둘러싼 외교·안보 지형이 급변할 전망이다. '동맹'의 가치를 내세우기 보다는 '비즈니스' 스타일을 중시하는 트럼프 특성상 미국 외교 전략의 틀이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단절됐던 북미 정상 간 '햄버거 대화'가 재개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그간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의 조건없는 대화는 열려있다'면서도 '대화 재개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은 없다'며 비핵화 원칙과 대북 제재를 이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난해 온 만큼, 이를 계승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김 위원장과의 협상 경험을 토대로 얼어붙은 북미 관계의 재설정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브로맨스' 여지를 남겼다. 그는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 후보 수락 연설에서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우리가 재집권하면 나는 그(김정은)와 잘 지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도 내가 돌아와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때보다 크게 진전된 북한의 핵공격 능력은 북미 협상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와 같은 대화 모드로의 전환이 이뤄질지 예측이 쉽지 않다.

북한은 지난 9월 처음으로 고농축 우라늄 제조시설을 공개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최종 완결판 ICBM"이라며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9형'을 고각 발사했다. 최장 비행시간을 갱신하며 정상각도로 발사될 경우 미국 본토 타격 가능성을 과시했다. 또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소형 핵탄두 '화산-31'의 성능 검증을 위한 핵실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핵무력 강화 노선을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집권 2기의 대북 정책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혈맹' 수준으로 심화된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도 북미 대화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를 통한 대북제재 폐지나 경제적 지원 대신 제재를 무시한 러시아의 지원에 의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이 러시아에 1만명 이상의 대규모 병력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트럼프는 그간 푸틴 대통령과 공식화하지는 않았지만, 일정 수준 교감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분위기는 다소 달라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발 빠르게 트럼프 당선자에 축하 인사를 전한 반면, 러시아는 아직 특별한 축하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 위원장은 당분간 북미 회담 자체에 관심이 없을 수 있다. 또한 '비핵화'보다는 '핵 군축'에 먼저 반응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전과 같은 비핵화 회담의 재개는 적어도 초기에는 기대할 수 없다"며 "핵무력정책 기조 유지의 맥락에서 초기에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비핵화 회담은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하노이 실패 트라우마를 고려할 때, 매우 신중하고 치밀하게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 최대 관심사는 핵 보유를 인정받고, 핵 동결을 전제로 '핵 군축 회담' 등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현 단계에서 긍정적인 전망을 하기에는 고려할 변수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성급한 단정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북미 간 대화 재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한국의 역할은 트럼프 집권 1기 때와 달리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실리적 거래를 추구하는 트럼프의 성향을 고려할 때, 북한과 연락 채널이 끊기는 등 최악의 관계에 봉착한 한국이 끼어들어봐야 별다른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향후 재정립될 것으로 예측되는 북미 관계에서 '한국 패싱론'이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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