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04.10 11:40

불투명한 무역 질서에 원·달러 환율 상승 여지 커
철강 및 항공 등 원가 부담 및 고정비 상승 불가피

포항제철소 철강 공정 모습. (사진제공=포스코)
포항제철소 철강 공정 모습. (사진제공=포스코)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위협에 노출된 국내 산업계에 고환율이라는 변수까지 등장하면서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9일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 상호 관세 90일 유예를 발표하면서 한때 1500원에 육박했던 원달러 환율은 일단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 정치 상황이 혼란스럽고, 트럼프 행정부도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르는 만큼, 원화 가치 하락 가능성은 언제든 남아 있다.

산업계에서는 환율 상승 시 수출에는 유리했던 과거와 달리, 해외 조달 및 생산 비중이 높아져 원가 부담이 크고 미국발 관세 위협 변수까지 있어 환율 추이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10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56원을 기록 중이다. 전날 최고치인 1487원 대비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 유예 발언으로 다소 하락했지만, 재상승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이 문제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관세 전쟁에 따른 교역 환경 악화에 원화 가치 절하가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서는 미국과 중국 갈등 격화로 중국 위안화 평가 절하 시 원달러 환율은 1500원 이상까지 갈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환율 상승 시 가장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은 철강이다.

철강재의 원료가 되는 철광석과 철강재 제조 시 들어가는 연료탄 등은 대부분 달러로 결제된다. 건설업에 쓰이는 철근이나 형강 등의 원료인 고철(철스크랩) 수입 비중도 적지 않다. 철광석 가격의 경우 이달 첫째 주 기준 톤당 104.52달러로 전주 대비 1% 올랐다.

철강 업계 고위 관계자는 "조선과 건설 등 전방산업 성수기를 앞두고 환율이 상승하면 원가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포스코 같은 대형 철강사는 환 헤지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겠지만, 워낙 변동성이 큰 상황이라 한계가 있고 중소 철강사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고 우려했다.

더욱이 철강은 상호 관세가 적용되지 않지만, 품목별 관세 25%는 그대로 적용되기에 수출 경쟁력 저하에 따른 추가 피해도 불가피하다.

대한항공 보잉 787-9 기종이 이륙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항공)
대한항공 보잉 787-9 기종이 이륙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항공)

미국발 관세 영향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항공 업계도 원달러 환율 상승 시 큰 피해를 받는 대표적 업종이다.

항공기 주유나 정비, 리스에 따른 고정비용을 모두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이다. 해당 비용은 항공사 매출의 30~40%를 차지한다. 대한항공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환율이 10원 상승하면 약 350억원의 외화평가 손실액이 발생한다.

북미 지역 등으로의 중장거리 여행객 수요가 감소하는 것도 문제다. 통상 항공사들은 원달러 환율 상승 시 중국과 일본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단거리 노선에 집중한다. 그러나 최근 원화 가치 하락에 원·엔화 가치는 상승하면서 일본 노선 수요 흡수도 위험해졌다.

원자재 수입 결제를 달러화에 의존하는 정유·화학 업종도 원가 부담 상승을 우려하고 있다.

통상 정유사들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환차손 부담은 1000억원 늘어난다.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이 휘발유·경유를 정제하기 위해 필요한 원유값 부담이 오른다는 의미다.

LG화학이나 롯데케미칼 같은 화학 기업도 주요 원자재 나프타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환율이 10% 상승하면 손실액은 3000억~4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환율 상승은 곧 수출 기업들의 환차익으로 이어진다는 기존 공식은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부과에 따른 세계 무역질서 붕괴로 깨졌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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