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현준 기자
  • 입력 2025.01.23 21:06

오전 9시 위임장 확인부터 표결까지…주주 간 고성과 속 진행돼
MBK·영풍 "무효" 주장하며 법적 대응 예고…경영권 분쟁 장기화

23일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가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고려아연)
23일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가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고려아연)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작년 9월부터 4개월간 이어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23일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첫 표 대결을 벌였다.

이날 주총에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순환출자' 전략을 활용해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면서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MBK·영풍은 이번 주총을 '원천 무효'라며 강력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해, 고려아연의 지배권 다툼은 법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임시주총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이날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오전 9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출석 주주 확인과 위임장 검토 절차가 길어지면서 개회 시간이 4시간 가까이 지연됐다. 

고려아연 측은 "중복 위임장이 많아 이를 확인하는 데 예상보다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MBK·영풍 측은 출석 주식 수를 먼저 공표할 것을 요구하며 강력 반발했다. 결국 주총은 오후 1시 52분에서야 개회됐다.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 에서 문병국 고려아연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 에서 문병국 고려아연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주총 전날인 22일 낮까지만 해도 이날 임시주총은 최 회장 교체에 나선 MBK 측이 유리하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고려아연의 지분 약 40%를 보유한 MBK 측은 의결권 있는 주식 기준으로는 과반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날 밤 최 회장 측은 ‘상호주 제한’이라는 제도를 활용해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약 25%의 의결권 행사를 막고 나섰다. 상호주 제한은 두 회사가 10%를 초과해 서로의 지분을 갖고 있을 경우, 각 회사가 상대방 기업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최 회장 측의 자회사 영풍정밀이 보유한 영풍 지분을 고려아연의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에 넘기는 방법을 썼다. 이에 따라 우호 지분 포함 약 34% 고려아연 주식을 보유한 최 회장 측이 표 대결에서 유리해진다. MBK·영풍의 의결권 지분율은 기존 46.7%에서 18% 수준으로 줄어든다.

영풍 측은 주총 연기를 요청하며 강력 반발했다. 영풍 측 대리인 이성훈 KL파트너스 변호사는 "어제 오후 8시 이후 전자투표가 마감되고, 주주로서 의결권 행사와 관련된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의결권이 제한된다는 얘기를 듣고 황당한 기분을 금할 수가 없고 강도를 당한 기분"이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상법 369조 3항을 적용해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것은 법률상 근거가 없다"며 "상법은 외국 회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고려아연 측은 법적 검토를 거친 결과, 영풍의 의결권은 제한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주총 연기 요청은 표결 없이 철회됐다.

고려아연은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서울 호텔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 안건 상정에 앞서 감사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고려아연은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서울 호텔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 안건 상정에 앞서 감사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이날 주총의 핵심 쟁점은 '집중투표제 도입'과 '이사 수 상한 설정'이었다. 최 회장 측이 강력하게 추진한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1-1호 안건)이 상정되자, MBK·영풍 측은 "위법한 절차"라며 즉각 반발했다.

MBK 대리인은 "집중투표제를 추진할 확신이 있었다면 한두 달 전에 준비했어야 했다"며 "급하게 주총 전날 집중투표제를 강행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크다.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고려아연 측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표결에 부쳤고, 찬성 76.4%로 가결됐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 이사회는 3월 정기 주총부터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게 되며, '3% 룰'이 적용된다. 3% 룰은 의결권 없는 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총수의 최대 3%로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방식이다.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 표결이 마무리된 뒤에는 '이사 수 상한 설정 관련 정관 변경의 건'(1-2호 안건)이 상정됐다. MBK·영풍 측은 "이사 수 상한 조정은 고려아연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중요한 사안이며, 현재 이사회 구성보다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인물들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사 수 상한 안건도 찬성 73.2%로 가결됐다. 고려아연은 1-2호 안건부터 8호 안건까지 일괄 표결을 진행, 대부분 안건이 가결됐다. 다만, 1-3호와 1-5호 안건은 부결됐다.

23일 임시 주주총회 현장에서 홍세규 MBK파트너스 전무가 기자들에게 입장문 배포 및 질의응답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23일 임시 주주총회 현장에서 홍세규 MBK파트너스 전무가 기자들에게 입장문 배포 및 질의응답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MBK·영풍 측은 주총이 마무리될 즈음 "위법한 의결권 제한과 집중투표제 도입 강행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김광일 한국기업투자홀딩스 부회장은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주총장에서 오후 7시 40분쯤 퇴장했다. 결국 오전 9시에 시작된 주총은 11시간이 지난 오후 8시경에서야 마무리됐다.

MBK·영풍은 임시 주총장을 빠져나온 뒤 발표한 입장문에서 "오늘 임시주총의 위법적인 결과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취소 및 원상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자본시장의 제도와 관련 법령에 따라 비록 시간이 걸리고 고통스럽더라도 저희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MBK 측은 당초 예정됐던 주총 이후 기자간담회를 취소하고, 24일 오전 온라인 질의응답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고려아연 측도 24일 오후 2시 같은 장소(그랜드 하얏트서울)에서 공식 기자간담회를 개최해 이번 주총 결과와 향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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