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8.23 05:00
(사진=박인기)

8월 9일 오전 8시 알베르게를 나서 엊저녁 제대로 못 본 시내 중심부를 둘러본 후 가르도(Gardo)로 출발한다. 몸 상태 구우웃 ~날씨도 구우우웃~! 오늘도 즐겁게 또 하루를 살자. 

(사진=박인기)

Town Hall을 지나자 나타나는 ‘CATEDRAL de San Salvador de Oviedo’. 그 위용과 첨탑의 장식적 다채로움이 호주 멜번 시티의 캐드럴, 그리고 파리에서 본 성당 노틀담의 첨탑을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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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부터 노르테 루트 해안길로 가거나 프리미티보 루트 그라도로 가든가 양자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이다. 그 중심에 오베이도 카테드럴이 버티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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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관통하며 건물, 아파트형 연립주택, 철근 계단구조물까지 도시를 상징하는 색채 선택이 고풍스럽고 차분하다. 디자인은 튀어야 한다는 시각적 자극성의 선입견을 어지없이 깨트린다. 역시 디자인은 생명력의 어울림이다. 디자인은 내용이 어떻든 사람과 어울려야 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편안하게 즐거움을 추구하며 균형적 조화를 추구하는 존재다. 환경적 요소는 생활에 어울려야 사람의 삶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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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오비에도 연립주택의 중간 톤 컬러대비는 노르테 루트의 강렬했던 푸르름과 주황색의 보색대비와 달리 차분하고 편안하다. 사람의 즐거움이 아무리 제도화되었다 해도 기본적으로 생명권을 전제하는 균형과 조화로움의 감각 속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사진=박인기)

보색대비, 혹은 색채대비 조차 즐겁게 삶을 영위하도록 진화된 양행하는 생명원리의 기본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하는 것 아닐까? 첫 인상 오비에도는 그렇게 매력적인 내륙도시 이미지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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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길에선 사람도 매력적이다. 아줌마 두 분, 아저씨 한 분 이렇게 세 명의 갈리시아 사람들과 프리미티보 첫 날 아침 동행하게 되었다. 6㎏씩 짊어지고 갈라시아에서 이곳 아스투리아 지방으로 이동하여 오늘부터 7일 동안 걸어갈 휴가길이란다. 이들 중에서도 두 아줌마는 반갑게 인사하는데 남자 한 분은 역시 좀 멀뚱멀뚱하다.  대체로 동서고금 불문, 나이 들고 번식 능력이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공통적 호르몬 부족 증후군 같다. 수줍음? 아니면 무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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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여성들은 나이가 들면서 또다시 세상을 포용한다. 반갑게 도움 주려하고 적극적이며 심지어 겸손하게 그 남성들에게조차... 어제 만났던 두 여성, 베네수엘라 ‘상선약수’도 천사 같았다. 오비에도 약 10㎞ 남겨 놓은 지점의 길은 하이웨이, 사람 출입이 금지된 길에서 우회하여 걷고 있는데 오비에도 향하는 길을 묻자 자기들도 그리 간다며 나를 차에 태우고 목적지까지 태워다 준 고마운 천사들이었다. 

(사진=박인기)

웃어도 환하게 웃는 여성들, 도움 주려 확실하게 나서는 여성들, 그들은 분명 도를 닮은 ‘상선’과 ‘약수’다. 돌이켜 보니...길에서 만났던 프랑스 여성, 빌바오에서 동행했던 마드리드 여성, 히혼에서 즐거운 삶을 보내는 샘, 그리고 오늘 갈리시아 여성들... 모두가 그렇다. 웃어도 남성은 빙그레~ 여성은 환하게 활짝 웃는다. 씩씩했던 프랑스 아줌마 말 대로 누가 먼저 세상에 나왔는지 그것으로 증명되고도 남는다. 나이 듦의 다정함, 친절함,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여유로움은 과연 남성과 여성 중 누가 더 배우고 익혀 따라 가야 할 사람의 길, 혹은 순례길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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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 둔 한국 청년을 오늘 오베이도 프라미티보 까미노 첫 날 길에서 만났다. 나이가 들어가니 친구보다 처진 것 아닌가? 직장 취업에 대한 초조함도 있고 해서 앞길에 대한 고민 등을 안고 두 주 일정의 순례길이 나섰다고 한다. 이런 얘기 끝에 그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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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길을 편하게 나서는 것도 좋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수단인 돈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순 없다"며 "취업부터 해야겠죠"라고 질문한다. 

(사진=박인기)

과연 나의 길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구체적인 까미노길에서 추상적인 이상의 길을 찾으려 애쓴다. 우리가 걷는 취업길, 출근길, 퇴근길 모두 내가 걷는 나의 길이다.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자금 돌길, 자갈길, 흙길, 숲길의 순례길울 걷는다. 우리가 걸어왔고 걷고 있는 그 길 모두가 순례의 길이란 걸 산티아고 순례길은 말하고 있다. 내게 익숙한 것,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현실적인 나의 길이다. 비록 이상적인 숲길이 아닐지언정 지금 걷고 있는 내 길이 바로 순례길이라는 것, 나의 길이 순례길이었다는 것을 프리미티보는 말하고 있다.

(사진=박인기)

세상 길에서 묻는 청년의 질문에 까미노식으로 대답했다. “돈은 중요하다. 취업도 중요하다. 그런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서면 그 길에 돈도 따라 올 것이다. 결국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길로 만들면 그것이 흙길, 돌길, 자갈길, 오솔길, 산길, 숲길 그리고 아스팔트 포장길이다. 내가 만든 그 길은 모두 즐거운 까미노가 된다.”

(사진=박인기)

가르도로 향하는 산길은 강원도 산골 내륙의 마을길을 많이 닮았다. 낮은 구릉, 멀리 길 따라오는 산맥과 그 속에 점점이 박혀있는 산골 마을들, 단지 좌우 농토가 옥수수밭, 배추밭과 다른 목초지일 뿐 거의 분위기가 강원도다. 비옥해서 질퍽거리는 흙길도 많고 우마차가 다니는 산길 농노길, 싱그러운 풀냄새, 이끼냄새... 모두 강원도 숲길은 걷기 참 편했다. 강원도 태백산 당골을 지나 반재로 오르는 계곡길 딱 그 느낌이다. 아 ~ 그러고 보니 옥수수밭도 펼쳐진다. 소 워낭소리도 들리고...

(사진=박인기)

목적지 약 3㎞ 전에 나타난 Bar Restaurante CASA AURINA의 시드라는 어떤 맛일까? 현재시간 오후 5시20분, 자금까지 8시간 50분간 36,318걸음 걸었다.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진=박인기)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Oviedo, Albergue de Peregrinos El Salvador→Paladin→Puerma→Penaflor→Grau/ Gardo 29㎞, 42,000걸음, 10시간 00분 (까미노 참고용 : Oviedo, Albergue de Peregrinos El Salvador→Grau/Gardo 26㎞, 8시간00분) 

*편집자 주=박인기는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한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제작부, 애드케이 종합광고대행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대학 강단에 섰다. 강원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과정도 수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올해 70살이 되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산악부 OB들과 종종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곤 하던 그는 지난 겨울엔 여름 호주 ‘The Prom’에서 4박 5일 백패킹을 했다. 이번엔 60일 동안 숙박을 겸한 산티아고 백패킹에 도전한다. 내년 겨울엔 호주에서 6박 7일간 ‘Overland Track’에서 백패킹하기로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 즐겁게 80살까지 세상 트레킹하는 것이 '걷는 삶', '꿈꾸는 삶'의 소망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꿈꿀 수 있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모두 산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7월 6일 13시20분 대한항공 여객기로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했다. 뉴스웍스 독자들도 그와 여정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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