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8.22 05:00
필자. (사진=박인기)

어젯밤은 올드타운에서 오다 말다하는 비룰 피하려 바(Bar)에 앉아 있다가, 옆자리에서 시드라를 마시던, 부부를 만나 합석하게 되었다. 7살 딸아이와 함께 저녁산책 겸 나왔다고 한다. 히훈에서 산다.

마누(왼쪽부터)와 딸, 샘. (사진=박인기)

영국 맨체스터가 고향이라는 45살 주부 샘(Sam)은 표정이 밝고 의사표현이 적극적이다. 자기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소개 한다. 그에 비해 다소 수줍은 듯 표현하는 남편 마누(Manu)는 요가를 좋아하고 컴퓨터 관련 기술지원을 하고 있는 48살 스페인 남자라고 한다. 내가 휴대하고 있는 버나연료 가스통을 보며 자기도 25살 처녀 때 여행하다가 캠핑 싸이트에서 마누를 만났었다며 활짝 웃는다. 늦은 시간까지 시드라를 마시며 즐겁게 저녁 시간을 함께 보냈다.

(사진=박인기)

옆에선 음악소리가 흥겹다. 이맘때 쯤이면 항상 중앙 광장에서 매일 밤 파티, 파티, 파티... 뮤직페스티발이 벌어진다고 얘기한다.

(사진=박인기)
(사진=박인기)

그리고 들썩이던  흥겨움을 뒤로하고 나는 밤 11시경 밀물로 들어선 밤바다 해변길을 한참 걸어 캠프로 돌아왔다. 표정 변화가 엄청 풍부했던 주부 샘은 영국 맨체스터가 집이고 마누는 이곳 히혼에서 약 30㎞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들 친절한 부부 환대 덕분에 마지막 노르테 밤을 참 인상적으로 보냈다. 감사합니다.

(사진=박인기)

8월 8일 오전 10시, 2차 루트 프리니티보 길을 나서기 위해 나는 오비에도로 향한다. 날씨도 쨍이다. 그 속을 웃통 벗고 걷는 노인들, 조깅하는 아가씨, 개와 함께 산보하는 아저씨, 자전거 타는 청춘들, 그리고 일찍부터 서핑 훈련하는 청춘남녀가 바다에 떠 있다.

(사진=박인기)

햇볕 좋은 산 로랜조 해변길을 가고 오는 히혼사람들의 즐거운 하루는 또 이렇게 시작한다.

(사진=박인기)

광장이다. 주거지역 도심에는 꼭 광장이 있어 오전시간을 차 마시고 담소하며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또 하나 부러운 주거문화다. 

(사진=박인기)

오비에도로 가는 순례자는 아마 나 혼자인가? 길 안내도 없어 방향대로 걷고 있다. 날씨가 너무 좋다보니 도로 온도는 35도를 훌떡 넘어섰다.

(사진=박인기)

꽤 왔나 싶은데 중간 바 La Curbs에서 확인하니 아직도 19㎞ 남았단다. 그래  오늘 중 가는 것으로 마음 먹고 시드라와 고기볶음을 주문했다. 이들 스페인 아스투리아 사람들이 사는 곳은 까미노 길과 상관없이 어디든 더불어 즐거운 곳, 바가 있다. 오후 3시30분, 5.25유로짜리로 시켰다. 길 위에서 맞는 시골 인심은 푸근푸근, 아줌마 아저씨 모두 엄청 푸근하다. 한 낮에  주인장 내외와 젊은 부부 그리고 내가 전부인데 내가 시드라를 주문하니, 보란 듯 젊은 아줌마도 시드라 한 병 달라하더니 익숙한 구석으로 가 시드라 받침 통 위에서 전통식으로 멋지게 한 잔 따라 마신다.

(사진=박인기)

시드라는 사과 원액으로 만들다보니 우리 막걸리처럼 바닥에 부유물이 뜨고 그것도 감출 겸 위에서 떨어뜨리며 부어 마시게 만들어 놓은 훙과 술을 섞는 지혜로운 전통 문화다. 우리 막걸리 사발을 새끼손가락으로 저어 마시듯... 자세히 힐끗보니 이집 안주인, 바깥 주인 모두 배가 남산만하다...그래도 함께 사는 즐거운 인생~!

(사진=박인기)

어제 저녁 함께 했던 영국 맨체스터 출신 샘 아줌마도 시드라를 즐기게 된 것 같다. 많이 마시다보면 속이 쓰라다며 경험담을 리얼 표정으로 표현하면서도 시드라에 사로잡힌 듯 대충 합석 후 4~5병을 아무렇지도 않게  즐겁게 마셨었다. 특히 아스투리아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시드라는 어디서든 기본으로 줄기는 것 겉다. 막걸리는 어떻든가?

(사진=박인기)

다시 길을 떠나며 주안 아주머니한테 감사 드렸더니 조금이라도 가까운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 주방에서 구글 검색한 것을 보여준다. 산길을 치고 가면 제일 가까운 길이 될 것이라면서.... 그래 , 모르면 묻고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또 물어라. 그 여인네들은 한 발 더 나간다. 가르쳐 준 대로 잘 가는지 지켜보고 있다가 100m 쯤 걸어가니까 좌측으로 꺽으라며 수신호까지 한다, 70살 걸음을 주욱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 아줌마들이 틀림없는 ‘약수’다. 

(사진=박인기)

덕분에 조금 짧아진 것 같은데 또 하나 문제는 산 동네 길이 여러갈래라 그 뒤로도 다섯 명의 도움을 받아가며 평지로 내려 올 수 있었다. 그런데 길을 걷다가 뜻하지 않게 만나는 고속도로, 하이웨이 앞에서 제일 난감해진다. 하이웨이는 사람 출입이 금지되어있기 때문에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때마침 사이클러의 도움, 그리고 베네수엘라 아줌마들의 도움으로 목적지 오비에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진=박인기)

오후 9시 넘어 들어간 오래된 학교 건물 기숙사 같은 쇠락한 분위기의 알베르게, 6유로에 하룻밤, 그리고 아침 9시까지 방을 비우라고 한다. 두 번째 루트, 까미노 피리미티보를 향한 오비에도 첫 밤이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레길=Gijon, Camping Gijon Costa Surf→Cenero→Oviedo 36㎞, 37,432걸음, 11시간 00분 (까미노 참고용 : Gijon, Camping Gijon Costa Surf→Oviedo 26㎞, 7시간00분)

*편집자 주=박인기는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한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제작부, 애드케이 종합광고대행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대학 강단에 섰다. 강원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과정도 수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올해 70살이 되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산악부 OB들과 종종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곤 하던 그는 지난 겨울엔 여름 호주 ‘The Prom’에서 4박 5일 백패킹을 했다. 이번엔 60일 동안 숙박을 겸한 산티아고 백패킹에 도전한다. 내년 겨울엔 호주에서 6박 7일간 ‘Overland Track’에서 백패킹하기로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 즐겁게 80살까지 세상 트레킹하는 것이 '걷는 삶', '꿈꾸는 삶'의 소망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꿈꿀 수 있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모두 산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7월 6일 13시20분 대한항공 여객기로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했다. 뉴스웍스 독자들도 그와 여정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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